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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9 22:30

장마비 내린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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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마비 내린 뒤...                             청초 이용분

    장마비가 쏟아지는 동안 씼은 듯이 조용하기에 올해는 그만 매미가 다 죽었나 했다.
    어느 날 매미란 놈이 우리 아파트 망창에 붙어서 신고라도 하는 듯 한바탕 울고 날아
    갔다. 아니나 다를까 장마가 멎자 매미가 다시 기승을 떨며 울기 시작했다.
    뒷길 개천 따라 욱어진 나무 밑을 지나노라니 극성 맞은 매미소리에 귀가 멍멍하다.

    개천바닥에 사람들이 큰 돌덩어리를 옮겨서 가물어 물이 조금 흐를 때 한곳으로 모여 흐르도록 앞으로 나라니 양쪽에 두줄을 세워 물길을 잡아 놓았었다. 장마 통 노도처럼 밀려오는 황토색 흙탕 물에 올해 따라 큰비가 몇 번 스쳐 지나갔다. 개천의 바위들은 흘러가 제멋대로 자리를 잡았다. 오히려 자연스러워졌다.

    흐르는 물길 따라 작은 계곡이 생기고 그 옆에 풀뿌리가 욱어져 자리를 잡았다. 저런 곳에 소쿠리를 대고 한쪽 발로 몰면 송사리 미꾸라지에 운이 좋으면 제법 큰 붕어도 잡힐 터인데... 물론 고기잡이를 즐기는데 그치지 그걸로 무슨 매운탕을 끓여 먹으려는 건 아니다.

    어렸을 때 바로밑 남동생과 이처럼 비온 뒤 고기를 잡으러 갔다. 작난으로 띄워 본 동생의 고무신 한짝이 불어난 빠른 물살에 둥둥 떠 내려가 버려 얼마나 황당했는지...
    그래도 어머니는 우리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 시절에 해본 가락으로 그 때를 생각하며 공연한 공상을 하면서 모처럼 마음이 즐겁다.
    요즘 아이들은 어느 누구도 고기를 잡으러 개천으로 뛰어 들지 않는다.

    큰물이 지나간 뒤니 큰 물길을 벗어난 작은 물줄기들이 또 다른 작은 내를 만들며 흐른다. 때 마침 어미를 따라나선 야생 새끼오리들이 물풀섶을 뒤지며 먹이를 찾기에 제가끔 바쁘다.냇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가던 한 젊은 엄마가 아기를 내려놓고 물 구경을 시킨다. 어차피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자연을 외면하고서는 살수가 없을 것이다.

    뚝길을 따라 걷다보니 하얗고 앙증맞게 작은 개망초 꽃, 이 꽃은 외국에서 묻어 들어온 꽃이라는데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점령하여 토종을 밀어내고 피어 있다. 강아지풀, 작은 해바라기를 닮은 노랑꽃, 올해는 이 꽃은 이미 피고 졌는지 오다가다 한두 송이 볼품없이 피어있다. 돈도 많은 데다 빈 구석을 못 보는 시당국이 보라색 맥문동 꽃을 곳곳에 심어 놓았다. 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꽃도 잎도 무성하다. 서둘러 가을을 알리려는 듯 보라색 개미취꽃이 수집은 소녀처럼 함초롱히 웃고 있다.

    낯이 익은 풀이 눈에 띄기에 드려다 보니 한포기 '까마중나무'가 무성하다. 길가 거름끼 없는 척박하고 얕은 땅에 자리를 잡았는데 어찌 그리 통통하니 실할까. 다른 이름으로 '깜뚜라지'라는 이풀은 미니 토마토 모양 작은 콩알만 한 열매가 연다. 익으면 열매가 새카맣게 변하면서 달콤해진다. 어린 시절 열심히 그 열매를 따서 먹고는 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 속에 씨를 빼내고 불면 작은 꽈리처럼 소리도 났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길바닥에 난 삘기풀 하얀 줄기도 뽑아서 질겅질겅 껌처럼 씹어 뱉어 그 달착지근한 맛을 즐겼다. 찔레꽃의 연한 순도 껍질을 벗기고 먹은 것 같다. 옥수수대도 많이 씹었다. 어떤 것은 지린맛이 나고 어떤 것은 정말 단물이 많이 나왔다. 아마 이게 사탕수수의 원조가 아니었을까.

    황해도에 살적에는 산에서 나는 '싱아'라고 줄기가 제법 굵은 풀줄기를 벗겨 먹으면 아주 연하였다. 그 맛은 새콤달콤하여 어릴적 입맛에 딱 맞었는데 어머니가 한단씩 꼭 사주고는 하셨다. 수수 밭에 심은 수수 열매 중에는 깜부기라고 수수열매가 영글지 않고 회색으로 곰팽이처럼 변형된 수수알갱이를 찾아서 즐겨 먹기도 했다. 그런 걸 먹어도 배도 아프지 않았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간식꺼리는 물론 모든 게 아주 궁핍하고 귀했다.

    변덕스런 여름 날씨다. 갑자기 하늘에서는 안개비 같은 비가 솔솔 흩 뿌린다. 비를 맞으면 시원하련만은 한여름 내리는 비는 하늘에서 데워서 내려 보내는지 후덥지근 무덥기만 하다. 성급히 돌아가는 길 나무 밑을 지나려니 때를 만난 매미 한 마리가 정말 '맴맴' 신나게 울고 있다. 초점을 맞추고 카메라를 들여대니 눈치를 챘는지 울음소리를 뚝 그치고 잽사게 후르르 날아가 버린다. 한 순간이 늦었다. 미물인 그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밤이 오니 뒷 창을 통해 들리는 건 귀뚜라미 소리가 완연하다. 새벽녘이 되니 제법 서늘해진 날씨에 귀뚜라미 소리가 더욱 힘을 실었다. 한낮에 제 아무리 더위가 맹위를 떨쳐도 올 여름은 이렇게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2011.8.4


(벌 개미취 꽃)


(맥문동 꽃)


(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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