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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팥죽 (모란시장 이야기)                              청초 이용분

 

오늘은 버티고개 동창회관에서 문학회 강의가 있던 날이다. 강의가 끝나자 마자

오늘은 모두 바쁜 일들이 있다면서 문학회원들 끼리 늘 갖던 차 미팅도 없이 뿔뿔이

헤어져 돌아오는 길이다. 11월 하순이라 겨우 5시가 조금 넘었는데 밖은 벌써 어둑해 진다.

 

평소에는 추운 날씨에 일부러 가야 되니 모처럼 오는 길에 모란시장에 들르기로 했다.

전철 모란 역 다음 정거장에 우리 집이 있다.

날이 저물었는데 장터가 열려 있기는 할까. 우선 모란 역에 하차를 하여 에스카레이타를

타고 올라가 보기로 한다. 이미 해가 져서 사방은 깜깜 한데 희미한 전깃불 아래서 사람들은

여전히 웅성대고 있다.

 

조금 더 시장 안으로 깊이 들어가니 백열전구 가로등이 희미하게나마 비치는 곳은 여전히 활발하게 장사를 하고 있다 늦가을이라도 날씨가 이리 푹하니 천만다행이다.

'모두들 사람 사는 게 무엇인지...'

 

불이 어두침침한 곳은 상품을 펼친 물건을 도루 거두고 점포를 정리하고 있다. 전에는 내가

제법 자주 팔아주던 인삼장사도 주섬주섬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반짝거리는 금니에 상냥하고

늙스그레한 아주머니가 평소에는 혼자서 '금산인삼'이라 하며 파는데 오늘은 남편인듯 한

사람이 돕고 있다. 그야 말로 파장이다.

 

나는 발이 좀 편한 평소 신발을 사려고 더듬더듬 찾아 갔다. 이곳은 여러 종류의 신들을

골고루 팔고 있어 이 따끔 찾아오는 점포다.

좀 뚱뚱하고 다혈질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뭐 그리 친절하지는 않지만 선들선들 시원시원하다. 어느 가게든 사람을 불러 모으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 하나는 있게 마련이다. 이 신발 가게도

어두운 속에 차츰 신발들을 정리하여 박스에 담고 있는 참이다.

모양도 마음에 들고 발에 꼭 맞는 문수를 불빛에 겨우 찾아 사서 들고 나오는 길, 밝은 불빛

아래서 확인 해 보니 제대로 사기는 한 것 같다.

 

건너편에 불빛이 유난히 환한 곳이 있기에 그 아래로 가 보니 팥죽을 팔고 있다. 팥죽 장사를

처다 보니 30대 중반 깨끗하게 생긴 젊은 아주머니다. 우선 장사가 깔끔하여 마음에 내킨다.

두 사람이 앉아서 팥죽을 먹고 있다. 한사람은 젊은 청년, 또한 사람은 좀 늙은 아주머니다.  

이 팥죽 맛있어요?“

, 맛 있어요^^“

늙스그레한 여인의 대답이다.

한 그릇에 얼마에요

요 작은 접시에 담아 파는 것은 4천원인데 이 프라스틱 반찬용 통에 담으면 두 그릇이

나오는데 5천원을 받아요”^^

 

납작한 접시에 비치는 비닐을 씌워 손님이 먹고 나면 비닐을 벗겨 버려 설거지가 필요 없겠다. 이게 4천원이고 작은 도시락 크기의 새 통을 보여 주며 이게 5천원이란다  

'응~~ 내가 어떤 날 장에 왔을 때 이곳을 지나게 되면 우리 남편이 말려서 사지 못하고는

했는데 오늘은 내 맘대로 해야지...'

"5천원어치 주세요.^^”

남편은 깔끔이라 이렇게 장터에서 음식 먹는 건 딱 질색이다  찹쌀 새알심이가 동동 뜨는

팥죽, 쌀을 넣어 끓인 팥죽을 반씩 섞어 담아 준다. 팥죽 국물이 묽으면 영 맛이 없는데

제법 걸쭉해 보인다.

 

돌아오는 길 어묵도 사고 옥수수 찐 것도 샀다. 늦은 시간이니 싸기도 하다. 여름은 아니니

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묵은 오뎅을 만들어 먹어도 되고 떡볶이 모양 고추장에 조려 먹어 보기도 해야지...'

옥수수장사 바로 옆에서 호객을 하고 있는 어묵장사를 보니 20대 초반의 어리석하고 착해 보이는 청년이라 물건도 좋겠지 하는 믿음이 생겨 팔아 주게 되었다. 요즘은 이 오댕도 옛날처럼 허술 한게 아니고 착실하게 길거리 간식으로 자리를 잡았다짐이 제법 묵직하다.

 

길바닥을 내려다보며 걷다 보니 반짝반짝 빛나는 건 5백원짜리 동전 아닌가베...

 부지중에 줍고 보니 이를 어쩐다. 몇 발자국을 가니 장애걸인이 동전이 담긴 바구니를 한옆에 둔 채

땅 바닥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보인다. 거기에 동전을 '짤그랑' 던지고 얼른 그 자리를

뜨니 그 걸인이 눈을 뜨고 두리번거린다.


다행히 늦저녁 날씨가 푸근하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마음이 가볍다. 벼르던 한 가지 일을 더 했으니... 집에 와서 사온 팥죽을 내어 보이니

그것 참 맛 있겠네

장터에서 이런 걸 사왔다고 무어랄까바 슬슬 눈치를 살피며 꺼내 놓았는데 남편이 반색을 하니 마음이 놓인다. 그도 요즈음 입맛이 없던 차였다.

 

팥죽을 쑤려면 아주 여물게 딱딱하여 쉽게 삶겨지지도 않는 팥을 오랜 시간 뜸을 드리며 물크러지도록 삶아야 된다. 이를 으깨서 체에 쳐서 걸러 내고 또다시 오랜 시간 지루 하도록 은근한

불 앞에 서서 주걱으로 쌀알이 밑에 늘어 타지 않도록 정성껏 저어야 된다.

 찹쌀 새알심이도 만들어서 넣어야 되니 그 번거로움이라니... 요즈음은 여간해서 만들어 먹기에 망서려지는 음식이다.

 

갑자기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마당이 넓은 화곡동 새집으로 이사를 간 직후라 그랬나 보다.

동짓날 팥죽을 쑤는 날이면 남편은 경상도식으로 먼저 팥죽을 퍼서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장독대

뒷곁 등 집안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니면서 '고수래' 하며 팥죽을 뿌린다.

나는 말리지도 못하고 '에그, 아까워라' 생각하면서도 저리 해서 마음이 편하다면 그리 해야지,

못 이기는 척 두고 보곤 하였다.

 

내가 결혼을 하여 처음 신혼살림을 나올 때 친정어머니가 말씀 하셨다.

'이런 일은 시작하게 되면 안하면 마음이 께름직 하게 되니 아예 그런 성가신 일은 시작하지

말아라.'

이제 팥죽을 쑤는 날이면 함께 즐거워하던 아이들도 모두 우리 곁을 떠나 옆에는 없다.

주거공간도 아파트로  바뀌니 팥죽을 뿌릴 곳도 없고 그간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모두 다 30여년이 지나간 옛이야기다.

 

오늘 저녁은 동지도 아닌데 힘 안들이고 생각지도 않았던 팥죽을 한 그릇씩 먹으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20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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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란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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