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사는 막내아들이 동경유학시절 같은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친구들을 만나고 지하철이 끊기기 직전에 분당 집으로 찾아 왔다. 아예 술을 마실 양으로 미리 차를 우리 아파트 앞에 주차 시켜 놓고 갔었다. 그애는 술 냄새를 살짝 풍기면서 돌아왔다. 한 동안 보지 못한 회포를 풀면서 우리 모자는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 보따리를 늘어놓았다.
이 막내 아들은 내가 공부하는데 연필깎기 힘든다고 '전동 연필깍기'를 사주고 아파트가 너무 춥다고 뒷발코니 모든 외창에 방한 볼록 비닐을 붙여 주었다. 가스렌지 차단 스톺어(stopper)를 달아 주고 화장실 욕탕이 춥다고 전열기를 사주는 아주 자상한 아들이다. 전동 '연필깎기'는 얼마나 편한지 늙마 공부에 손 힘이 약해진 요즘 연필을 깎을 때 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곤 한다.
자주 오지를 못하니 서울에 오면 자발적으로 내가 사는 분당집 청소를 깨끗이 해 주고 간다. 세 아이 중 바쁜 형이 미쳐 못하는 부분을 채우는 게 그애가 맡은 분야로 불문률처럼 되어 있다. 해가 뜬지가 한참 되었는데 일어나지를 못하고 늦잠을 잔다. 저렇게 자고 언제 청소를 해주고 저의 집에 가려고 하는 건지...
몇 번을 깨워도 전혀 일어 날 기미가 없다. 만만하여 다시 채근을 하니 “엄니, 너무 피곤하여서요.” 한다. '아차! 그랬구나.전주에서도 그애는 학교 연구실에서 노상 늦게 퇴근을 하지 않던가...' 일순 마음이 확 바뀐다. “그래, 그까짓 청소 안하고 가도 괜찮으니 싫컨자고 그간 피로를 풀고 가거라.^^” 한참을 더 자고 나더니 부스스 일어난다.
“엄니, 오늘은 한참 못가 본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하고 점심은 맛있는 만두집을 찾아가서 먹기로 해요.” 한다. 일순 마음이 뭉쿨한다. 늦은 아침을 먹고 집에 있는 사과 배 감등 골고루 과일과 과자류에 남편이 술 대신 생전에 좋아 하던 커피를 한잔 놓아 드리기로 한다. 보온병에 펄펄 끓인 물을 한병 가득히 담아가지고 가까운 곳에 그가 잠들어 있는 '메모리얼파크'에 찾아 갔다.
한 겨울이라 낙엽을 떨근 나목들이 온 산자락을 지키고 오다가다 이름 모를 산새들만이 우지지며 날고 있는 쓸쓸한 묘역... 생전에 남편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끼친 공들을 기리며 읍을 올린다.
이제는 맛있는 만둣국 집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차를 끌고 온김에 두루 볼일을 보잔다. 사연인즉 두어 달 전에 전주 아들집에 갔을 때 유명 만두집을 찾아 갔는 데 공교롭게도 일요일이라 모두 문을 닫아 버려서 만두국을 대접하지 못했던 일을 생각하고 오늘 그일을 꼭 실천하려는 모양이다.
우선 '네비'가 시키는 대로 길을 찾아 나섰다. 어디 한적한 곳으로 가려나 했더니 분당 중에도 도심으로 달린다. 전에 남편과 함께 자주 찾곤 했던‘대구탕’집 가까이 다가갔다. 온군데 음식점인데 우리가 찾는 만두집 간판은 아무리 둘러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차를 마땅하게 세울 곳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골목길을 한동안 돌고 돌아 겨우 빈곳에 세워놓고 우리는 팔장을 끼고 걷기를 시작했다.
날씨는 사납게 춥고 외투 앞자락을 아무리 여며도 틈새로 스며 드는 칼 바람을 막지는 못한다. 늦은 아침을 먹었지만 시간이 오후 4시가 지나가니 나는 시장끼와 추위에 온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얘야 엄니가 이제는 너무 늙었어.어디 가까운데 들어가서 그냥 뜨뜻한것 먹고 말자 잉^^" 한창 젊은 아들은 내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오직 그 소문난 맛 집에 나를 데리고 가서 그 맛난 만두 국을 꼭 사주려는 일념에 귀에 들리지를 않는다.
보이느니 산지사방에 널린 게 식당가인데 아들을 그연이 그 만두집을 고집하고 전화를 걸어 본다. 세 번이나 통화를 한 끝에 근근히 찾아 들어간 곳은 아주 비좁은 골목에 식탁수가 겨우 5.6개 놓인 아주 초라한 분식집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
청결한 하얀 옷을 걸친 늙스그레한 두 여인이 좁은 부엌에서 음식 만들기에 동분서주 여념이 없다. 그리 근사하지는 않아도 푸근한 전통 음식점 분위기를 상상하고 갔던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바로 내 코앞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애를 먹는 두 노인을 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않다. 우리가 주문한 얼큰하게 매운 일반 만두국에다 종합만두접씨 메뉴가 별맛도 없고 입안이 까끌까끌하다. 내가 상상했던 국물맛이 뜨끈하고 구수한 만두국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세상에 사람이 안 되려고 들면 이렇게 골로 빠지게 되는구나...
인터넷에 떠도는 뜬 소문따라 무조건 나선 길이 낭패다.정말 어이없는 경험을 하였다. 아들에게는 그런 말을 안했지만 입맛이 씁쓰름하다. 그리 몹시도 추운날 그 처럼 벼루던 나의 만두국 맛집 탐방은 이렇게 싱겁게 마감을 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엄마에게 맛있는 만두국을 사주려는 막내 아들의 깊고도 순후한 일념이 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오랜 여운으로 남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