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의 슬픔

by 이용분 posted May 2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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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찔레꽃의  슬픔              청초  이용분

    오늘은 하루 온 종일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추운 한 겨울이 지나서도
    두껍고 무거운 검푸른 색 옷을 입은 채
    묵묵히 현관문 앞을 지키던 수문장
    주목이
    춘심을 못 이겨

    잎 끝에
    작은 콩알만 한
    아기 씨를 매 달았다.

    봄의 전령인
    진달래 꽃 아가씨가
    매섭던 지난 해 겨울을
    잘도 이겨내고
    몰래 몰래
    숨어서 키워온
    연 분홍색
    조그만 아기 꽃망울들을

    여기 좀 보라는 듯
    갑자기
    터 뜨렸다.

    지난 해
    한 여름날에 피어났던
    새 하얀 찔레 꽃.
    온갖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던
    은은한 향기와
    고운 그 자태를
    모르는 이 없으련만

    꽃이 지면
    나 몰라라
    그만 잊혀 지는 게
    세상 사.

    찔레 꽃 빨간 열매를
    집 새들이나 개똥지빠귀들이 찾아 와서
    제발 쪼아 먹어 주기를 ...

    애 타는 색  빨간색으로
    잘 영글어
    목 길게 늘여서 기다리는
    찔레 꽃 열매의
    안타까움이
    이 봄비 속에
    애처로이 남아 있을 줄은
    그 아무도 모르리라.

    모진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겨우내 얼어서 굳은 땅
    힘차게 밀어 올리고
    고개를 빼꼼이 내 밀어
    제일 먼저
    봄 뜨락을 점령하는
    이별 초의 도톰한 새순과
    샛 노란색 꽃 애기똥 풀도 뒤질세라
    제가끔 돋아나

    봄은 이미 이렇게
    돌아 와 있었노라
    뽐내고 있다.

    키도 덩치도 제일 크지만,
    늦 되어서
    초조해진 감나무가
    나라고 뒤질소냐
    급한 김에
    봄 빗방울을 가지 끝에 매어 달고

    높다란 봄 하늘 속에
    제 홀로
    영롱한 구슬인양
    제멋 대로 뽐 내고 있다.

                                     2003년 3월







      (아기똥 풀)

     (찔레꽃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