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어린시절의 소원 Skylark
내가 어릴 적에는 만화책이나 동화책을 많이 갖고 보는 게 큰 소원이었다.
어느 날 드디어 아버지께서 꿈속에서 동화책을 사주셨다. 그래서 잠결에
진짜인가 하고 머리맡을 두 손으로 휘휘 저어 더듬던 기억 까지 선하다.
그러나 손을 휘저으면서 그게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되던 순간 그 현실이
얼마나 허망했던지....
벌써 60 여년을 족히 지나간 세월 속에서도 그 서운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당시 읽을 책이 많은 친구와 집에 꽈리나무가 많은 친구는 아주 부자처럼
보였다. 오락거리가 거의 없었던 시절 유일한 놀이 감이 꽈리였다. 그 오랜지
색의 등속에 든 꽈리 속 동구란 열매를 꺼내 씨를 빼내고 입안에 넣고 입이
아프도록 불던 꽈리...
초등학교 시절 지금은 누구라고 짐작이 안가는 어떤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
그 집은 한옥 집이었다. 한지 종이 문이라 좀 어둑 침침한 안방에 앉아 처음
보는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 친구가 가진 만화책들을
다 읽고 가야 될 터인데 하고 조바심을 냈던 생각이 난다.
그때 읽은 책이 ‘산두령 아가씨’ 라고 ‘재 투성이 아가씨’ 라고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신데렐라’ 이야기인 것 같다.
또 어떤 동화책은 ‘석양 속에 종소리’ 라고 저녁 종만 울리면 오빠가 억을 하게
사형을 받게 되는 대강 그런 슬픈 이야기였던 것 같다.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성당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침저녁으로 교회나 성당에서 꼭 종을 울리던
시절이다. 저녁나절 성당의 종이 울리면 그 이야기 속의 오빠가 죽을 터인데 하고
공연히 마음을 조렸 던 생각이 난다.
어릴 때에 나는 부모님에게 무엇을 사 달라고 조른 기억이 없다. 내가 만약 사달
라고 졸랐다면 사주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런 순하고 양보심이 많던
아이었다. 그 시절에는 동화 책 이라던가 어린이들을 위한 모든 게 아주 귀한
시절이었다. 그저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세월이었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은 친구들이 보는 것을 주로 서로 빌려보곤 하였다.
그 책을 빌려 보려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하두 많아서 쌀 배급 타는 줄 서듯이
내가 제일 꽁지에 순서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후로 마해송씨가 쓴 토끼와 당나귀 이야기 만화를 사 주셨다.
당나귀가 점령군으로 약한 토끼 나라에 쳐들어 와서 흰 토끼를 잡아다 까만 물감으로
물들여 가며 핍박을 하는 일제시대를 풍자한 만화외 몇 가지를 사주신적이 있다.
최근에는 큰아들이 20%정도 싼 값에 택배까지 해주는 곳을 통해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사서 보내 주곤 한다. 젊을 때 그렇게도 구해 읽어 보고 싶었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그 작품도 그중의 하나이다.
요즈음은 글쓰기와 다른 글을 보기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그 책은 한옆에 잘
모셔놓고 읽어야지 하고 벼루고 지낸지가 몇 달이 되었다. 이제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그 책을 독파해야지 하고 아주 굳은 결심을 하고 잠 들기 전 스텐드
불빛 아래에 엎드려서 읽기를 시작 했다.
이제는 관계 설정이 복잡한 글은 읽고 소화하기가 힘에 겹다. 사람들 이름도
기억하기가 힘들어 다시 돌아가서 다시 읽고...
이 나이에는 수필처럼 상황이 확실한 글을 읽는 게 마땅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난여름 읽었던 기억이 어지간히 되살아났다.
최근 들어 우리 또래 친구들의 나이가 지긋 해 지니 그들 손에 하나 둘 커다란
다이야 반지를 끼고 다니는 게 눈에 띠곤 한다. 나도 젊은 시절 남편이 우리의
결혼식 때 못해 주었다고 해외연수를 갔을 때 제 비용을 아껴 쓰고 사다 준 알이
자그마한 다이야 반지가 있었다. 어느 날 집에 좀 도둑이 들어 훔쳐 간 후 다시
반지를 할 염을 잊고 지나고 있다.
그 옛날에 동네 친구들과 했던 조그만 계를 들어 만들어 놓았던 금반지가 있다.
조그만 꽃송이 들이 모여 마치 토끼풀 꽃반지 모양의 조각(彫刻)이 다이야몬드
자리에 달려 있는 금반지다. 금혼식 날이니 이를 끼고 한복을 입고 우리 세자녀들
내외와 손자 손녀 다 함께 모여 조촐하게 결혼 50주년 금혼식 축하를 받았다.
지금에 와서는 다이야몬드 반지 보다 나에게는 아직도 눈이 밝았을 때 읽지 못했던
책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더 많은 문학 작품을 읽었더라면 지금 쓰고 있는
내 글들이 좀 더 다양 해 지고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아이들을 한창 키울 때에는 아이들 참고서 사주기도 바빴다. 그래서 길거리에 돗자리에
펴 놓고 파는 천 원짜리 책들, 가시나무 새, 오싱, 사랑과 야망 등을 사 읽으면서 마음을
달랬다. 먼데 사는 친구한테서 '천국의 계단' '성채'이라는 책을 빌려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눈도 어두워지고 활자를 읽어 내려갈 시력(視力)이 현저히 저하되었다.
전에는 속독(速讀)이었던 내가 최근에는 형편은 충분히 되나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읽지 못 하게 됐다는 현실이 더 큰 아쉬움으로 남는 가을이다.
08년 1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