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장사꾼 할머니 청초 이용분
우리 집에서 지하철을 타러 나가는 길 양옆에는 하늘 높이로 큰 나무숲이 우거져있다. 이른 봄부터 한여름과 늦가을 눈 오는 겨울날에도 꼭 거쳐야 되는 길목이다. 계절 따라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고 갖가지 색 단풍 들고 낙엽이 진다. 한겨울 눈이 내려 낭만적이긴 하지만 길이 미끄러워 곤욕도 치른다.
반 공원화 된 이 길 끝머리 큰 길 가에 이곳 분당이 개발되기 전 원주민격인 노인 할머니들이 앞앞이 자기 집 텃밭에서 키운 야채들을 길바닥에 나란히 늘어놓고 팔고 있다.
열무 파 구부러져 상품성이 없는 가지 오이 까지도 작은 소쿠리에 수북이 쌓아 놓았다. 자잘해서 골머리 아픈 쪽파를 열심히 까는 한편 잘 나오지도 않는 자지러드는 음성으로 제가끔 자기 물건을 사가라고 쉰 목소리로 호객을 해 재낀다. 보통은 바쁜 길이니 곁 눈길로 쳐다보며 지나가곤 한다.
그네들은 원래 여기 살던 원주민들인데 분당이 개발이 되면서 땅값이 천정부지 올라서 떼 부자가 되었지만 그 많은 돈다발들은 젊은 아들 손에 다 넘어 가고 텃밭에 밭농사를 지어서 이렇게 근근이 사는 노인들도 있다고 한다.
시내에 볼일을 보고 오늘은 뒤늦은 시간에 귀가길이다. 다른 노인네들은 물건을 다 팔고 모두 가버린 모양이다. 두어 할머니가 아직도 판을 벌리고 지나가려는 나에게 호소라도 하듯이
" 이 상추 요게 마지막인데 이것만 팔면 집으로 가려고 하는 데 이것 좀 팔아 줘요" 우연히 눈이 마주친 나를 향해 호소하듯 외쳐 댄다.
‘내가 팔아 주면 저 노인이 하루 종일 길바닥에서 괴로웠을 시간을 끝내고 편히 집으로 가겠구나 ’ 하는 생각에 아직은 조금 남은 묵은 상추가 냉장고 안에 있을 텐데...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쪼그리고 할머니 앞에 앉았다. "그거 담아 주세요." 그러자 욕심이 생긴 할머니 "이것도 좀 안 살라우?" 하얗고 깨끗하게 손질해 놓은 쪽파들 더미들을 가리키며 더 사주기를 권한다. "우리 집에도 안 깐 쪽파가 한웅큼은 있어서 안 살래요" 나는 원래 파를 싫어해서 김치 담구는 일 말고는 파를 기피한다.
내가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할머니 손에 넘겨주는 순간 어떤 중년 주부가 삶아 놓은 나물을 가르키며 "이건 무슨 나물이에요?" 한다. "취나물이유 좀 사 가슈 내가 싸게 줄 터이니^^" 내가 보기에는 그 나물이 너무 푹 삶겨져서 어째 좀 곤죽이 된 느낌이라 한 조각을 집어 들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상하지는 않았고 취나물 냄새가 나기에 "취나물이네요" 했다. 떨이로 그 나물을 싸게 주겠다던 할머니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한웅큼 쥐어서 까만 비닐 주머니에 넣으면서 "삼천 원 만 내슈" 순간 그 중년 아주머니 "안 살래요" 하고는 발길을 옮겨 가는 순간 "왜 그러슈 그럼 이거 다 사천 원에 줄께 사슈." "그래도 안 살래요." "할머니가 이랬다저랬다 하니 안사고 싶어 진거에요" 당황한 할머니 " 이거 몽땅 다 삼천 원에 가져 가슈" 그제서 야 그 중년 아줌마 다시 쪼그리고 앉으면서 돈을 꺼내 놓은 게 오만 원짜리다. 당황한 할머니 " 내게 그 거스름돈이 있으려나..."
순간 내게 있는 흰 봉투 속 만원짜리들이 생각나서 ‘그거라도 바꿔 주어서 사고 팔게 해 줄까...’
할머니가 꺼낸 조그맣고 꾀재재한 돈 주머니에서 다행히 구겨진 만원짜리들이 몇장 우수수 나와서 바닥에 쌓이는 걸 본 순간 "할머니 부자시구나^^ 돈이 많네..." 나는 안심이 되어서 그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 내 상추 값 이천 원 내고 가슈 " 하는 게 아닌가... 너무나 당혹스러운 순간이다. 이를 어떻게 증명하지...? "에그! 어쩌나. 잘 생각해 보세요. 아까 전에 내가 이천 원을 돈 봉투에서 꺼내 드렸잖아요. 내 참 기가 막혀서... 정신을 똑바로 잘 차리고 장사를 하셔야 해요."
나는 오도 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사이 자기가 내어 놓은 천 원짜리 두 장이 겹쳐 있는 걸 만지면서 "이 돈인가...?" 한다. 나도 그 순간 그 자리를 떠났다. 한 바퀴 돌고 되돌아오는 길 그 할머니는 어느 춤에 선가 다시 상추를 그만큼 꺼내 그릇에 담으면서 "떨이예요. 이것만 팔면 내가 집으로 갈 텐데... 좀 팔아주세요" 이렇게 애처로운 목소리로 다시 외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