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큼 쌉싸름한 벚지의 맛 *

by 이용분 posted Jun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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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큼 쌉싸름한 벚지의 맛 *             청초      이용분

생각지도 않던 올여름 장마가 시작 됀다고 일기예보에서는 말했다. 며칠 전 시원한
장대비가 한 나절 퍼 붓더니 작은 개울의 물이 훨씬 깨끗하고 힘차게 흘러 내려간다.
낮에는 덥기 때문에 요즈음은 좀 늦으막 하게 운동삼아 밤에 탄천엘 나가기로 했다.
개천가의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가 어인 일인지 얼룩덜룩하기에 뽕나무 오디라도 떨어
졌나 했더니 어느새 익어서 떨어져 밟힌 버찌열매 액 자국들이다,

길을 재촉하며 돌아오는 길 어떤 아주머니 둘이서 벚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끌어
내려서 무엇인가 열심히 따 먹느라 여념이 없다. 무얼 하나 보았더니 까맣게 잘
익은 벚지 열매다. 호기심이 발동이 걸려서 나도 모르게 그 들과 함께 버찌를
따서 먹어 보게 되었다.

언제나 남편과 함께였었지만 마침 오늘은 혼자서 나섰던 길이라 나도 홀가분하여
그들과 함께 동참을 할 수 있었다. 콩알만 하게 작은 것이 과육은 얼마 안 되나  
쌉싸름하고 달콤한게 옛 추억이 새롭다.

아무리 손이 바쁘게 따서 먹어 봐도 쌉싸름한 맛만이 혓바닥에 돌뿐 씨를 빼고 나니
목구멍으로 넘어 가는 것은 별로 없다. 요새는 포도 알 만큼이나 큰 체리열매들이
팔리고 있다. 물론 수입종일 것이다. 마침 사방이 캄캄한 밤이라 우리들을 눈여겨
보는 사람은 없다.

지나가던 젊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무얼 하세요?” 묻고는 그냥 스쳐 지나간다.
우리들 처럼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이를 먹어 보고 자란 같은 추억이
있을 리 없는 사람들이라 별로 흥미가 없나 보다. 알고 보니 나의 아이들도 이 열매에
대한 추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혓바닥의 색깔이 시커무리
하게 보인다. 혀에는 쌉싸름한 맛만이 여운처럼 남아 있다. 그게 약이 된다나...

한 동안 그리하고 있던 우린 서로 까맣게 색이 변한 혀를 내 보이며 마주 보았다.
모처럼 어린 아이가 된듯한 우리가 좀 멋적기도 하여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허리를 부여잡고 ㅎㅎㅎ 통쾌하게 한참을 웃었다. 마치 몇십년 전 동심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다.

평소 해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일,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마침내 해 보았을 때 오는
만족감이라고나 할까. 어릴적 젖이 부족하여 항상 껄떡거리던 아이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 마음껏 젖을 먹어 본 기분이라고나 할까.

다음 날 밤에 다시 그 벚나무 밑을 지나게 되었다. 내가 어제 있던 일을 이야기하며
버찌를 따주면서 먹어 보기를 권해 보았지만 남편은 그걸 왜 먹느냐고 펄쩍 뛰며
게처럼 뒷거름 질을 친다. 그도 이에 얽힌 애뜻한 향수는 없나보다. 그러나 어떤
여자선배님은 이 버찌와 오디 산딸기를 싫컨 먹어 보는 게 소원이라고도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요사이 미처 날이 새기도 전 이른 여명부터 근처 새들이 이 나무
숲 속에 모여 하루 온정일 유난히도 울어댔다. 그들도 모여서 이 버찌열매를 따서
먹느라 그리 했었구나 하는 짐작이 든다. 오늘 저녁 다시 가서 따 먹어 보리라 혼자
마음속으로 즐거운 미소를 지어본다. 모처럼 잠겨 보는 어린 날의 향수이다.

지나간 모든 걸 이렇게라도 다시 경험 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