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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21:50

추석날과 정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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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과 정원정리                      청초

작년 8월 이후 일년여를 우리 부부는 건강이 여의치 않아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참이다.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요즘 우리에게 제일 큰 즐거움은 과연 무얼까하고 자문을 해 보았다. 이번 추석에 우리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제일 큰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이번 추석을 기다리게 되었다.

화곡동에 사는 큰 아들 집에 차례를 지내러 갔다가 차례를 지낸후 곧바로 처가 댁에 다니러 가는 작은 아들 차편을 타고 돌아 온 참이다. 가는 길에도 그 애의 차를 타고 갔었다. 처음에는 작은 아들은 그냥 가게 두고 우리는 큰아들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자 주장하던 남편이 밤새 마음이 바뀌었다.

사실 큰 아들이 모든 왕복 차편을 우리를 모시겠다고 하였으나 그를 사양했다. 맞벌이 큰 아들네가 차례 준비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까. 그 생각에 미치자 큰아들이 우리를 따로 데려 오가려면 막히는 왕복 찻길에서 또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였다.

 

남편이 작년 추석무렵 생사의 갈림 길을 오가던 생각을 하면 이번 추석 큰아이집 방문이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 작년에는 제대로 추석도 지내지 못하였다. 대문 앞에서 큰 아들은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석날 아침이 밝았다. 몰라보게 훌적 커버린 손자 손녀가 곱게 때때옷을 차려 입었다. 이보다 더 고은 꽃이 어디에 있으랴. 아이들은 집안의 꽃이자 희망이다. 정성스럽게 추석 차례를 모신 후 우리 가족 모두는 큰상앞에 둘러 앉았다. 시원하게 잘 끓인 토란국에 곁드린 불고기와 갖가지 전과 나무로 차려진 추석 음식을 정답게 먹었다.

 

지난 밤 오랜만에 만난 아들 형제는 맥주와 막걸리에 오징어 땅콩 안주를 사다 놓고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다 늦게야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다시 차를 몰고 가려면 힘들 터이니 제가끔 잠을 보충하라고 권하였다.한숨을 자고 난후 우리 정원에 나가 보자고 제안을 하였다.

이곳에 도착 처음 대문을 들어서면서 보니 2년 가까이 안와 본 사이 정원의 나무들은 건사하기 힘들 정도로 무성해져 있다. 그 무성한 나무를 정리하려면 정원사가 돈 백만원을 달란다고 한단다. 그래도 하게 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어떤 나무를 베어낼까 의논을 해 보기로 했다. 집에 있는 정원 정리 도구를 들고 죽은 나무 가지 정리를 하며 길을 내다보니 일에 가속도가 붙었다. 정원 때문에 골몰스러워 하는 큰 아들을 생각하여 자연스레 누구랄것도 없이 우린 나무를 정리하고 있었다.

큰 나무 밑에 있는 작은 나무는 햇볕을 보지 못하면 꽃도 피지 않고 모두 말라 죽는다, 봄이면 진붕홍색 꽃을 피워내던 커다란 둥치의 둥근 영산홍 나무가 모두 말라 죽어간다.

 

언젠가 작은 묘목을 심었던 산수유나무는 세(勢)를 얻어 가지를 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컸다. 어느 해 새가 둥지를 틀었던 가지에 새둥지도 그냥 남아 있다. 아깝지만 너무 많은 가지는 속아 내고 자르기로 했다. 힘이 좋은 막내아들은 자루가 긴 가위로 척척 잘라낸다.  

 

십수년전 내장산에서 유난히 새빨간 단풍이 곱게 든 큰 어미나무 밑에 난 성냥 개비 굵기의 어린 새끼나무를 갖다 심은 단풍나무도 이젠 모두 잘라 버리게 됐다. 아깝다, 이 나무가 크면 예쁜 단풍이 들겠지하며 심었던 묘목들이 서로 가지가 뒤엉키며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남편은 오직 정원을 간결하게 해야지 하는 일념으로 모두 잘라 낸다.

 

높은 나무가지 사이로 올해 따라 빛갈이 고운 감이 익어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려있다. 너무나 높으니 따먹기는 힘들테고 겨우내 새들의 먹이가 되겠지... 가지 정리를 하다보니 차차 뚫려 하늘이 보인다.

 

생각하면 이집에서 지난 날 우리의 가족의 모든 역사가 이루어진 집이다. 작은 아들이 두살때 이사온 새집이니 이제 그애 나이가 46세니 어지간히 오래 산 집이다.큰아들은 이곳이 우리 모두의 고향집이라며 모처럼 정원에 모인것을 즐거워한다.이곳에 몇층집을 짓고 아래층에는 아버지 엄마 2층에는 자기네 3층은 막네네...함께 모여 살잔다.

 

또한 엄마가 유명한 작가가 되면 작가의 고향집이 될것이라며 잘 지키겠다고 다짐을 한다.그냥 해 보는 소리지 과연 그런날이 오기나 할까? 그럭저럭 나무는 정리는 되어간다.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다. 큰아들도 마음이 조금 편하겠지...

 

딸아이가 시댁 차례를 지내고 사위와 함께 외손자들을 데리고 다니러 왔다. 추석날엔 점심만 먹고 막내 아들 차편으로 우리도 함께 바로 길 떠나기로 한다는 얘기를 듣고 부리낳게 왔다고 한다. 마침 점심때가 되니 모두 다 함께 점심을 먹고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돌려 작은 아들 차편에 편승을 하여 돌아온다.

 

차중에서 "에그, 누나하고 할 얘기가 많은 데..." 하며 그애도 아쉬워 한다.이도 한 가지 가족사랑이다 싶어서 우리가 택한 길이니 어찌하랴.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이 얼마나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지... 손꼽아 기다렸던 그 귀한 시간을 충만하게 갖지 못한것에 못내 마음이 아릿하다. 

 

북한강변 찻길은 다시 귀가하는 사람들의 승용차로 모든 길이 꽉 메워 있었다. 올해 따라 유난히 길을 나선 차들이 많은 것 같다. 세상살이가 점점 각박해져 가니 가족을 찾는 심정이 더 애뜻 해 지는 걸까. 모두 힘들지만 그래도 추석은 즐겁고 가족간 화합을 일게 하는 우리 모두의 즐거운 명절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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