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일기 / 이해인

by 김 혁 posted Mar 0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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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상일기 2

    아플 땐 아프다고

    신음도 하고

    슬프면 눈물도 많이

    흘리는 게 좋다고

    벗들이 나에게 말해주지만

    진정 소리 내는 것이

    좋은 것인가

    나는 나의 아픔과 슬픔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지

    그들은 내게 딱 부러지게

    대답은 안했지만

    침묵을 좋아하는 눈빛이기에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지

    끝내 참기로 했지

    병상일기 3

    사람들이 무심코 주고받는

    길 위에서의 이야기들

    맛있다고 감탄하며

    나누어 먹는 음식들

    그들에겐 당연한데

    나에겐 딴 세상 일 같네

    누구누구를 만나고

    어디어디를 가고

    무엇무엇을 해야지

    열심히 계획표를 짜는 모습도

    낯설기만 하네 . .

    아프고 나서

    문득 낯설어진 세상에

    새롭게 발을 들여놓고

    마음을 넓히는 일이

    사랑의 임무임을

    다시 배우네

김점선님 畵

김점선에게

오늘은 나도

이상하게 기운이 없는데

'힘내!' 라고

말해줄래요?

언제우리

다시 만날 그날까지

그대가 좋아하는

맨드라미 꽃 열심히 그리며

기쁘게 지내세요

심심해 하지 말고 -

"미치겠다!" 라고 말해서

나에게 야단맞은 것

늘 재미있어 했지요?

희망은 깨어 있네

나는

늘 작아서

힘이 없는데

믿음이 부족해서

두려운데

그래도 괜찮다고

당신은 내게 말하더군요

살아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가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힘든 일 있어도

노래를 부릅니다

자면서도 깨어 있습니다

- 암투병생활 2년여 만에 집필한 시 100편을 모아

<희망은 깨어 있네>라는 책으로 발간되었다.

그는 "고통의 학교에서 새롭게 수련을 받은 학생"이라고 자처한다.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동요를 극복하고 세상과 사물, 인간을

좀 더 넓고 여유있게 대하는 법을 배웠다고, . .

시인이 말하는 희망이란

먼 미래에 있지도 않고, 먼 곳에 있지 않으며,

길을 걷고 ,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기도하는 바로 <이곳 현재>에 있다고 . .

"아침에 잠이 깨어 옷을 입는 것은 희망을 입는 것이고,

살아서 신발을 다시 신는 것은

희망을 신는 것임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고 한다.

- 新刊 [희망은 깨어 있네] 中에서 발췌 / 畵: 김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