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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7 07:52

모란 장날.( 1 )

조회 수 1972 추천 수 42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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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장날.


오늘은 모란 장날이다.
남편과 함께 올 겨울 김장에 쓸 고추를 사기 위해 가벼운 손수레를 끌고
전철 모란역에 내려서 시장 쪽으로 가는 에스카레이타를 타고 올라갔다.

벌써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잔뜩 사가지고. 돌아 가는이, 우리처럼 시장을 향해서
가는 이, 무언가를 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
길가에 앉아 좋은 자리를 더 차지하기 위해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좀 더 비키라
자리 다툼을 하는 장삿 꾼.



보드 불럭 바닥에 천원짜리 지전을 쫙 붙여놓고 `수재의연금을 냅시다` 하고
일렬 종대로  늘어서서 소리치는 사람들. 나는 왜 돈을 땅바닥에 붙여 놨는지.
이유를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고...  이런걸 이렇게 내라는 뜻이겠지?
제가끔 자기의 물건을 팔려고, 또 사려고 분주한 게 당장에 혼이  쏙 빠진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남편은 꽃구경도 아주 좋아하지만  같이 온 나와는 아무상관 없는 사람처럼
무엇이든 구경하기를 무척 좋아한다.  호기심 충만이시다.
` 오늘만은 어서 원래의 목적을 잘 합시다 `  하면서 반 강제로 팔을 잡아 끌고는
김장용 고추를 사기 위해 고추전으로 갔다.

이곳에 오면 고추가 그리 싸지는 않지만 달기도 하면서 맵기도 알맞은 좋은걸
골라 살수있다. 고추는 매운맛 뿐만 아니라 김치를 아주 맛있게 하는성분도 있다.
분당으로 이사온 후로는 좋은 고추를 골라 사기위해 꼭 이곳에서 사곤 한다.

고추를 파는 장터엔 수도 없이 세워놓은 샛빨간 색갈의 파라솔 아래에서는
제가끔 흥정들이 한창이다.  빨간색  파라솔을 씌우는 이유는 고추가  빨갛게
잘 익고 잘 말려 좋은 것처럼 보이라고 그렇게 한단다.
<마치 육고간의 빨간 조명이 진열된 소고기가 신선해 보이라고 그러는 것처럼.>



올해의 고추는 느닷없는 늦장마와 많은 비 피해로 잘 마르지도 않고 上品이
없어 보인다. 일년간 먹을 만큼 많은 양을  사야  되니까  아무래도  좀 나은걸
찾아 보려고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다가 잠시 발을 멈추고는 우연히 어떤
아주머니가 파는 근처에 서서 초점없이 무심하게 고추를 쳐다보면서 골라서
살일이 난감하여,

`올   해에는 좋은 고추가 정말 없네...` 나 혼자 낮은 소리로 혼잣말을 하였는데
어느새 알아 듣고는 그 아주머니는 갑자기 자기가 파는 고추를 대 여섯개
집어 들더니 길 바닦에 윷가락 던지듯 내 던지면서
  ` 아니 이렇게 좋은 고추를 안 좋다하면 어떤 고추를 살려고 하시유?'
하고 다분히 시비조로 덤빈다.

(고추가 영 안팔리는 모양이지.저리 난리니.)
하고 순간 생각하면서도
`에그 누가 손님한테 저리 하누?  싸나와서 살려다가도 못 사겠다.`
속마음으로 생각하고는 나는 아연 실색을 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한참을 더 돌아 다니다가 다른 한곳에 들러 좀 순해 보이고, 말씨도 좀
어늘해 보이는 한 아주머니의 물건이 좀 잘 말르기도 했고 가격도 그냥
적당하다,
자기가 옥상에서 직접 말렸다나 어쨋다나. 햇볕에 말린 고추라는 뜻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믿기로 하고 ( 환경이 싸나우니 나도 그만 유하던
마음이  이리 되었다) 물건이 그냥 괜찮기도 하지만 아주머니도 순해 보여서...
흥정이 잘 되어서 사기로 마음을 먹고
`그럼 이 걸로 담아 주세요.` 하고 말했더니 어디론가 향해 누구인가를 부른다.

그 녀의 남편인 듯한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는 쳐다 보지도않고 바람개비처럼
기계적으로 잽싸게 고추를 자루에 주워 담더니 담은 자루의 피무게 만큼도 더
안 주려고.     <원래 자루 무게만큼은 더 주게 되어있고 고추는가벼워서 제법
그 양이 많다>    (순한 그 아주머니를 보고 샀더니만...) 돌연히 안면을 바꾸고 
어찌 싸나움을 떠는지...  



갑자기 놀란 가슴.   유해보이는 자기 마누라를 앞 세우고는 뒤엔 또 저런
싸나운  복병이 숨어 있다니....
( 미인계로구나...) (허기사 저렇게 짝이 맞아야 험한 이 세상 살아 나갈수 있겠지)

생각을 하면서도  난 씁쓰름 해진  입맛을 다시며 얼른 고추값을 치르고 돌아왔다.

돈을 잘 쓴다는것도 쉬운일은 아니다.
이 세상을 잘 살아 간다는 것  자체가  더욱 쉬운일은 아니다.  
참 힘든 일이야....

                                                               2002년 9월 모란 장날에
                          
  2003년 3월 13일  Skylark  (7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