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다스린다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
아이와 의견이 다를 때 교육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어떤 것일까?
대화.
신체 접촉.
이야기 들어주기.
반영 적 경청.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생각해도 나의 의견이 퉁겨져 나오는 것을 아프게 확인하였을 때.
그래,
제일 많은 부모들이 사용한다는 방법.
매를 들었다.
사실 이전까지는 매를 댈 필요가 없었다.
회초릴 찾는 시늉만 해도 얼굴빛이 변하며, `잘못했어요.`를
다급하게 외쳐대던 둘째였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엉덩이를 대라고 싱갱이를 하다 아이에게 거부당하고
엄마의 임의로
엉덩이에 매를 대는데
고개를 쳐들고 눈을 똑바로 뜨며 안 아프다고 외친다.
엄마더러 벌하라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거 아니니
매 때리는 것도 힘이 들더라.
거기다가 아이와 싸움이 되니 약까지 오르고
드디어 어깨에까지 매가 갔다.
그런데도 아이는 아프다는 소리 한번 없이 그 매를 다 견딘다.
나는 이게 아닌데 싶다.
잘못했어요 라든 가 아님 아프다고 눈물을 흘리든지 해야
협상으로 발전될텐데
끌어 내야할 결과가 유도되어지지 않으니
행위에 무슨 명분이 부여되겠는가.
매를 놓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 꼴이 우스웠다.
대화를 하려해도 곁을 주지 않고
자기를 그냥 내 버려 두라는 아이의 말에 격분하여 매를 들었으나
아이 말대로 그냥 내버려 둔 것만도 못한 결과를 앞에 놓고 망연하게 앉아 있었다.
눈물이 나왔다.
맞은 아이는 아픔을 견디고 있는데
나는 어디가 아프길래 눈물을 흘리는가.
그것이 나의 부끄러움을 감출 보호색이 되려나.
눈물을 감추려 아이를 끌어안았다.
거세게 뿌리치는 아이를 향해 더 힘을 주었다.
엄마는 너하고 얘기가 하고 싶었는데....
일찍 와서 규리랑 놀려고 기대하고 왔는데..
아이는 가만히 말한다.
엄마 잠이 안 깨서 그렇게 말했어요.
엄마 미안해.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놔두라고 외치던 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읽어내며 제 마음을 열고 있었다.
아이의 엉덩이에 빨갛게 자욱이 나있었다.
아이의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켰다.
거품을 많이 내어 따뜻하게 목욕시키니
상처가 났을 때 처방전 필요 없이 혀로 핥아서 침으로 치료한다는 동물의 세계 이야기가 떠
올랐다.
오늘로 내 아이는 매로 행하는 모든 의식을 졸업하게 될게다.
엄마를 거듭나게 하는 쾌거와 함께.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가 그 길을 지나온 지 얼마나 오래 되었다고
어른이 되어서도 잊혀지지 않을 상처 하나 또 주었으니.
그러나 오늘의 일이
내 아이의 어제와 오늘을 나누어
마음의 그릇 훌쩍 크게 하는 기점이 되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많이 부족하여
다소 거칠고 미흡한 방법으로 길 안내를 했지만,
규리야!
그 방법이 너를 사랑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거야.
엄마는 규리를 아주 많이 사랑해!
2001 12 25
이쁘게 봐주세요! 알고보면 참으로 여린 후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