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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LA 근교의 산마리노에 있는 헌팅턴 도서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미국 문학 관련 책들을 보기 위해 고물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서가로 들어오는 순간 코를 스치는 독특한 냄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어딘지 축축하고 매캐한 오래된 책 냄새다.


이렇게 책 냄새를 맡고 가르치는 일이 내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이런저런 일에 부대끼고

시달리며 얼마간 까맣게 잊고 있던 냄새다.


서가를 훑어보는데 프랜시스 톰슨이라는

영국 시인에 관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대학 다닐 때 영시개론 시간에

톰슨의 "하늘의 사냥개"라는 시를 배운 적이 있다.


"나는 그로부터 도망갔다, 낮과 밤 내내 그로부터 도망갔다.

시간의 복도를 지나 내 마음의 미로를 지나,

나는 그로부터 도망갔다. 그러나 그는 늘 내 곁에 있었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재미있는 비유로 묘사한

이 시를 가르치며 교수님은 

사람마다 독특한 마음의 냄새를 갖고 있다고 하셨다.


심통난 사람은 심통 냄새를 풍기고,

행복한 사람에게서는 기쁜 냄새가 나고, 무관심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모두 다 주위에

마음이 체취처럼 풍긴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얼마 전 어떤 TV 프로에서 진행자가

병든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피자 배달을 하는 청년을 인터뷰했는데,

그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진행자가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좋은 냄새가 나는 가정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 배달을 다니면

정말 지독하게 춥습니다.


그런데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현관문을 들어서면

언제나 그 집 특유의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집이 크든 작든, 비싼 가구가 있든 없든,

아늑하고 따뜻한 사랑의 냄새가 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딘지 냉랭하고 서먹한 냄새가 나는 집이 있습니다.

아늑한 냄새가 나는 집에서는

정말 추운 바깥으로 나오기가 싫지요.

저도 훗날 그런 가정을 꾸미고 싶습니다."


오래된 책의 향기 속에 파묻혀 앉아 새삼 나는 생각한다.

내 집의 냄새는, 

아니 나의 체취는, 

내 마음의 냄새는 무얼까



장영희(서강대 교수/ 영문학)



 
  • ?
    김 혁 2004.10.08 22:12

    장영희 교수는 우리 부고 후배(26회)입니다.
    유명하신 영문학자 장왕록 교수의 둘째 따님입니다.

    그에 관해서는 우리 총동 홈의 "자유투고"(04-10-2)에서
    그의 동기인 윤은숙 후배가 인용한 글에서 감동적인
    내용이 수록되어있습니다.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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