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여자다.
한 번도 예쁘다는 말을 들어 본적도 없고, 내세우거나 자랑할것도없이,
아주 평범하게 살아오느라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내 존재의 귀함을 늙음
속에서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청춘 예찬만큼이나 늙음의 아름다움을 예찬 하고 싶다.
자동차를 타고 편안히 大路를 달려 이곳까지 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크고 작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고생고생 찾아 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도 이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산을 넘으며 힘들고 물을 건너며 괴로웠던 어떤 날들이 있었기에
늙음이 주는 휴식의 편안함이 더 가슴속에 스며드는지도 모르겠다.
大路로만 大路로만 달려 왔다면,
산 속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의 아주 작은 몸짓의 경의 로움이나,
냇물이 보내는 다양한 메시지에 귀 기울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한창 젊어 앞만 보고 달릴 때야 옆이나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달려야만 했다.
이기심이나 내 욕심이 욕심인 줄 몰랐으며, 내다리가 짧은 줄도 모르고
멀리 달리는 사람만 시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늙음의 포로가 된 이 시점에서야 이것 저것이 보이는 여러개의 눈을
달게 되었다.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가 아니라,
네 입장에선 네가 옳다는 너그러움을, 예민하게 대립하는
갈등과 감정이 있어도
웬만하면 「통과, 통과」해 버리는 여유가 생겼다.
그 결과로 바보멍청이 같아도 마음의 편안함을 맛보는 것은 둔자(鈍者)가
되어버린 내 자신이다.
늙었다는 것, 더 늙어간다는 것은 이렇듯 넉넉함이며
포용이며 이해이니 인생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힘차게, 불끈 솟는 아침 해의 장엄함만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하루를 뜨겁게 밝히고 서산 너머로 천천히, 천천히 곱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태양의 아름다움을 보았을 것이다.
고요와 평화가 깃든 그 아름다움......
옷깃을 여미며 바라보게 되는 그 무엇이 있다.
늙음 속에는 젊은 날의 정열과 용기, 많은 좌절과
시행착오, 그리고 성취의 기쁨과 부끄러움이 용해되어 있어
젊음 못지않게 더없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런 늙음이 더 빛나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두꺼워진
나이껍질을 과감하게 깰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쓸모없는 고집불통 늙은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손자들의 대화에도 기꺼이 낄 수 있고, 그들이 피곤하고 힘들때 마음놓고
기댈 수 있는 나무 그늘이 될수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이제 파란 잎으로 무성했던 나무가 그 잎을 다 떨어뜨린 다음
홀가분한 몸으로 겨울을 준비하듯,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애착과 쓸 데 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훌훌 벗어 던지고
영원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 준비를 해야 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리하여 “죽음이 내게로 가까이 오면 나는 호롱불을 들고 마중을 나가겠다"
는 타고르의 詩句처럼 그렇게 여유롭고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하며
늙음도 죽음도 별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
내 마지막 소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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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필은 정숙경 동문이 50 주년 기념 행사때 낭독한 글을
내가 대신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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