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받는 수술
한두 해 전의 일이다. 아내(산부인과 의사)가 전화를 받다말고
「요즘은 바섹토미(정관을 끊고 묶는 단산수술)하는데 얼마쯤 들지요?」 하고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통화를 끝낸 아내가, J선생의 전화였는데 바섹토미를 받고자 하는 환자 한분을 보낼터이니 잘 보아 달라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J선생은 아내의 동기생인 여의사로 우리 이웃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경영하고 있는 분이다.)
얼마 후에 그 환자가 왔다. 그는 별로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어수룩해 보이지도 않는 40세 전후의 점잖은 남자였다.
그는 자기가 지방에 있는 공무원으로 서울에 교육출장을 와있는 중이라고 소개하고, 그 기간을 이용해서 수술을 받으려고 하는데 교육에는 지장이 없겠느냐는 등을 물었다.
나는 전혀 요식적인 질문, 말하자면 아들 딸이 몇이며 교육기간이 언제까지이며 식사는 언제했는냐는 등을 물은 다음, 수술 후 주의사항 몇가지를 일러주고는 바로 수술실로 올라가게 했다.
환자를 뉘어놓고 수술할 자리를 준비한 뒤에 소독포를 덮고 수술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막상 정관(精管)을 잡아 올리려고 낭피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하자 누워있던 환자가 별안간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무슨 수술을 하시는 겁니까?」 하고 소리를 쳤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한순간 호흡을 조정하면서
「왜 그러십니까? 정관수술을 하려는 참 인데요」 하고 태연한듯 대답했더니, 이번에는 그 환자가 한층 더 놀라는 표정이 되면서
「네? 정관수술이요? 나는 포경수술(包莖手術)을 받으러 온건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다행히 아직 마취주사도 칼도 대기 전이었으니 망정이지 큰 실수를 저지를 뻔 한 순간이었다.
정중한 사과와 변명을 하고 또 환자를 진정시킨 뒤에 그가 원하는 수술을 끝내주고 내려왔다.
그리고는 다시 그에게, 그와 나 사이에 여의사가 끼어 있었고 그래서 서로 거북하니까 직접 표현을 쓰지 않은게 탈이었던 모양이라고 변명 겸 해명을 해주고는 그 곤경에서 벗어났다.
환자가 돌아가고 나서 즉시 아내와 J선생에게 따져 물어보니 역시 <바섹토미> 라는 전문용어는 분명히 의사의 입에서 시발된 것이었고 처음에 환자가 의사에게 자기의 목적을 말할 때는 직접 표현을 쓰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환자는 <남자가 받는 수술>이라고 하면 으례히 포경수술을 지칭하는 것으로만 알았던지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산부인과 여의사는 나름대로 그만한 나이의 <남자가 받는 수술>이라면 당연히 단산수술(斷産手術) 일꺼라고 판단하고 환자의 면전에서 전화하면서도 원어(原語)를 써서 전하였기에 듣고 있던 환자조차 그 와전을 눈치 채지 못하였던 것이다.
허기는 내게도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의사가 남자환자 고유의 수술 얘기를 전해 오는데도 아무런 생각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 들였던 것도 그렇고, 딸 하나 아들 하나 밖에 두지 않은 그 사람이 정관수술을 받겠다는 데도 그저 <지방사람 치고는 좀 개화된 공무원이구나> 하고만 생각했지, 그 나이가 되도록 남는 포피(包皮)를 그대로 덮어 두고 있는 촌스런 꼴에는 눈길을 주지도 않았고 따라서 한두 마디 쯤 귀띔을 하지도 않았었으니 말이다.
아뭏든 지금 다시 돌이켜 보아도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기억이다.
(수필집「함께보는 거울」, 79.11.23)
한두 해 전의 일이다. 아내(산부인과 의사)가 전화를 받다말고
「요즘은 바섹토미(정관을 끊고 묶는 단산수술)하는데 얼마쯤 들지요?」 하고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통화를 끝낸 아내가, J선생의 전화였는데 바섹토미를 받고자 하는 환자 한분을 보낼터이니 잘 보아 달라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J선생은 아내의 동기생인 여의사로 우리 이웃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경영하고 있는 분이다.)
얼마 후에 그 환자가 왔다. 그는 별로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어수룩해 보이지도 않는 40세 전후의 점잖은 남자였다.
그는 자기가 지방에 있는 공무원으로 서울에 교육출장을 와있는 중이라고 소개하고, 그 기간을 이용해서 수술을 받으려고 하는데 교육에는 지장이 없겠느냐는 등을 물었다.
나는 전혀 요식적인 질문, 말하자면 아들 딸이 몇이며 교육기간이 언제까지이며 식사는 언제했는냐는 등을 물은 다음, 수술 후 주의사항 몇가지를 일러주고는 바로 수술실로 올라가게 했다.
환자를 뉘어놓고 수술할 자리를 준비한 뒤에 소독포를 덮고 수술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막상 정관(精管)을 잡아 올리려고 낭피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하자 누워있던 환자가 별안간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무슨 수술을 하시는 겁니까?」 하고 소리를 쳤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한순간 호흡을 조정하면서
「왜 그러십니까? 정관수술을 하려는 참 인데요」 하고 태연한듯 대답했더니, 이번에는 그 환자가 한층 더 놀라는 표정이 되면서
「네? 정관수술이요? 나는 포경수술(包莖手術)을 받으러 온건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다행히 아직 마취주사도 칼도 대기 전이었으니 망정이지 큰 실수를 저지를 뻔 한 순간이었다.
정중한 사과와 변명을 하고 또 환자를 진정시킨 뒤에 그가 원하는 수술을 끝내주고 내려왔다.
그리고는 다시 그에게, 그와 나 사이에 여의사가 끼어 있었고 그래서 서로 거북하니까 직접 표현을 쓰지 않은게 탈이었던 모양이라고 변명 겸 해명을 해주고는 그 곤경에서 벗어났다.
환자가 돌아가고 나서 즉시 아내와 J선생에게 따져 물어보니 역시 <바섹토미> 라는 전문용어는 분명히 의사의 입에서 시발된 것이었고 처음에 환자가 의사에게 자기의 목적을 말할 때는 직접 표현을 쓰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환자는 <남자가 받는 수술>이라고 하면 으례히 포경수술을 지칭하는 것으로만 알았던지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산부인과 여의사는 나름대로 그만한 나이의 <남자가 받는 수술>이라면 당연히 단산수술(斷産手術) 일꺼라고 판단하고 환자의 면전에서 전화하면서도 원어(原語)를 써서 전하였기에 듣고 있던 환자조차 그 와전을 눈치 채지 못하였던 것이다.
허기는 내게도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의사가 남자환자 고유의 수술 얘기를 전해 오는데도 아무런 생각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 들였던 것도 그렇고, 딸 하나 아들 하나 밖에 두지 않은 그 사람이 정관수술을 받겠다는 데도 그저 <지방사람 치고는 좀 개화된 공무원이구나> 하고만 생각했지, 그 나이가 되도록 남는 포피(包皮)를 그대로 덮어 두고 있는 촌스런 꼴에는 눈길을 주지도 않았고 따라서 한두 마디 쯤 귀띔을 하지도 않았었으니 말이다.
아뭏든 지금 다시 돌이켜 보아도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기억이다.
(수필집「함께보는 거울」, 79.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