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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게 보이는 의사, 비참하게 보이는 의사

  이 세상에는 실로 많은 수의 의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특히 남보다 더 훌륭해 보인다거나 또는 아주 비참해 보이는 의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사라는 직업의 속성이 그러하듯이 대개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드러나는 일을 하기를 좋아하지 않거나, 또는 설혹 그런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선악간에 남의 눈에 뜨이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 눈에 뜨이는 작은 선, 작은 악들이 여러 대중의 눈에는 크게 확대되어 보이게 마련이고 따라서 그것은 전체 동료의 보람이 되기도 하고 또 공통의 치욕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건 이렇게 소수가 다수를 인상지어 주는 경우를 겪으면서는 우리 서로가 동료의 배태(胚胎) 된 선악을 눈여겨보게 되고 그래서 함께 격려하거니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가깝게 서서 유심히 바라보는 의사들의 실상(實像) 속에서는 허구 많은 적나라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외과 수련의 시절에 만났던 K선배는 어느 모로나 친형과 같은 우애 깊은 분이었습니다.
  학문과 지식과 기술의 전수에 있어서는 정확하고 엄격하기 이를 데 없었고 사사로이 접하는 일에는 인자하고 자상하기 비할 바가 없었습니다.
  환자를 대하는 데는 친절과 성실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하고 지위나 빈부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몸소 실천으로 가르치셨으며, 동료 간의 어려움을 서로 돕거나 윗분을 받들고 수하사람을 거느리는 방법을 행동으로 일러 주셨습니다.
  내가 이 분에게 나의 사사로운 일을(심지어는 나의 배필을 선택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서의 결정적 자문까지를) 의논하게 된 것도 다 그분이 전신에서 풍기고 있었던 자애의 향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또 나의 동문이기도 한 S의대의 K교수를 흠모해 마지않습니다.
  그는 그의 본분이 학문의 연구와 후학의 교육임을 가장 실천적으로 이행하는 장본인입니다.
  전공학문의 연찬에 남달리 부지런하고 꾸준한 면모를 보이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틈만 있으면 후학의 교육으로 부터 개업의의 연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관심과 정열을 쏟아, 진실로 이런 이가 많이 있어야만 우리의 의학계가 날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의 관심은 명예도 지위도 아니고 치부 따위는 더욱 아니며 오직 학문 그 자체 일뿐 입니다.
  나는 그가 우직스러우리 만큼 그의 학문에 전념하고 있는 성실한 모습에 그만 반하고 말았습니다.
  다음으로 나는 여기에 구원(久遠)의 의사상(醫師像)이라고 할 의사 한분을 더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미 연전에 도하의 지상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고 또 우리 의료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모두가 다 잘 알고 있었던 J박사 말입니다.
그 분이 막사이사이상 사회봉사부문상을 수상했대서가 아니고 또 그 분이 이광수(李光洙) 작 <사랑>의 주인공 <안 빈>(安 賓.의사)의 모델 이었대서가 아닙니다.
그 분은 「돈의 욕심도 권세의 욕심도 명예의 욕심도 사업의 욕심도 없이, 욕심이 있다면 오직 하나, 어떻게든지 남에게 좋은 일을 하자는 욕심만을 가지신 의사」(종교사상가 H옹의 말) 이며, 오직 사랑과 믿음과 정성만으로 평생의 의업을 이어 오신 기독교정신의 화신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피난지 부산의 역경 속에서 천막 3개로 무료진료소를 차려놓고 무수한 구원과 은혜를 베푸신 일이며, 그것을 발판으로 C의료협동조합과 자선병원을 발족시켜 가난한 이들에게 현대적 의료혜택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이 말씀 하신 바 「동기와 목적이 좋고 그 방법이 좋으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 는 굳건한 신앙의 소산일 것입니다.
  제한 없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 가식 없는 사랑으로 환자를 돌보시는 J박사야말로 세기적 모범 의사임에 분명합니다.
모름지기 훌륭한 의사라 하면, 그는 그의 본분이 <의사>임을 항상 자각하면서 모든 사리판단과 행동을 <의사>답게 여행(勵行)하는 분일 것이며, 나아가 의사이기 이전의 신분인 하나의 <인간>으로서도 남부끄럽지 않은 인격과 품성을 지닌 그런분 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로는 이처럼 쉬운 일이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주위에서 그런 분을 쉽게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의사라기보다는 장사꾼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돈의 노예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인사나,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파렴치한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 만한 비참한 의사들이 훨씬 더 눈에 많이 뜨이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모 병원의 V원장은 원로급 의사의 한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오랜 개업연조를 통하여 많은 주위의 시민들로 부터 용한 의사라는 별호를 받고 있고 또 따라서 장안에서 몇째 갈만한 재산도 모은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환자를 다루는 자세에 있어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경우를 여러 차례 겪고는 나는 아주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40세 전후의 한 농부가 병색에 찌들린 그의 노부를 모시고 V박사의 용한 진찰을 받으러 왔습니다. 몇 가지 검사와 진찰만으로도 그 노인은 위암의 말기에 와 있음을 곧 알 수 있었고 따라서 그가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곳에서 마다 퇴짜를 맞은 이유도 명백해 졌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환자의 아들을 은밀히 불러들인 V박사의 결론은 뜻밖에도 단호했습니다.
  「위가 좀 헐었소. 수술하면 되요. 즉시 가서 소(牛) 팔아가지고 오시요!」
  아뿔싸! 수술대 위에서 죽일망정 원이나 없게 해주겠다는 자비심에서였던가 봅니다.
  불현듯 수없이 떼어 팽개쳐진 멀쩡한 쓸개주머니들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의 치부의 상징인 병원 건물의 벽돌 하나하나가 더없이 암적색갈의 핏빛으로 돋보였습니다. 치병(治病)을 치부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의사라면 그는 진정한 <의사>일수가 없으며 또 의사 중에서는 가장 불쌍한 의사의 한 표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무직원이나 조수를 내세워 환자를 사들이거나 사고 당한 이를 끌어다 준 거간꾼에게 돈을 쥐어 준 의사가 자기의 약점 때문에 사무직원이나 하찮은 거간꾼에게 늘 발목이 잡혀 지내는 꼴도 참으로 불쌍하달 수밖에 없는 다른 예입니다.
  그리고 부정행위를 상습적으로 일삼는 K대학병원 모 과의 상급 전공의 C도 비참한 의사의 또 다른 한 예입니다.
  C는 넉넉해 보이는 환자로부터는 그런 대로의 수단으로 촌지(寸志)를 우려내고, 가난해 보이거나 얕잡아 보이는 환자는 어르고 뺨쳐서 억지 촌지(?)를 쥐어 짜내는 비상한 재주를 지녔습니다.
  진료비 때문에 걱정하는 보호자를 붙잡고 동정해 주는 척 하면서 엄청난 진료비 액수를 넌지시 귀띔해 주면 그들은 의례히 매달리게 마련입니다.
「같은 여자끼리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얘기하세요. 내가 힘이 되어 드릴께요... 사실 힘은 좀 들어요. 내 밑에 여러 사람이 있고 해서요. 그러나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자- 아무 때고 필요하면 다시 찾아오세요.」
  아뭏든 90만원이 예고되었던 자궁외임신 수술의 총진료비가 그 절반으로 꺾일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그 이유가 순전히 <촌지> 10만원 덕분이었건 아니건 간에, 없는 사람에게는 얼마간 다행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참담한 것은 그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환자나 우려내는 재주를 전공하는 C전공의의 앞날이요. 한심한 것은 이따위 의사를 수련시키고 있는 K대학병원 당국이며 억울한 것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그와 동류로 분류 받고 있는 모든 다른 선량한 <의사>들 입니다.
  그 밖에도 한심하거나 비참해 보이는 의사는 또 있습니다. 말하자면 의사단체의 책임 있는 명예직위를 그게 뭐 그리 대견스런 감투라고 온갖 떳떳치 못한 수단과 부정(不淨)한 방법으로 움켜잡고는, 일의 성과 보다는 생색에, 능률보다는 국물에, 그리고 정당한지의 여부보다는 자리보존에 더 열렬한 관심을 보이는 그런 위인 따위 말입니다.
  자격 없는 선거권자를 끌어들여 당선되고도 그게 마치 제 잘못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듯 낯붉힐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자리를 억지 버티기 위해서 어떤 식언도 위약도 거리낌 없이 남발하고 동료도 선후배도 없이 아무에게나 비굴한 웃음을 흘려가며 당장의 매도를 호도하는 어느 의사단체의 임원의 경우가 그 한 예입니다.
  그가 그 단체의 연래의 대역사(大役事)를 제때에 마무리 짓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는 이유도 그의 그 떳떳하지 못한 자리바탕 때문임이 뻔합니다. 아니 어쩌면 끌면 끌수록 더 오래도록 짬빵의 맛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은근히 즐겨가면서 더 끌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르긴 합니다.
  아뭏든 나는 이런 위인이 도무지 의사인지 정치가(?)인지 아니면 정상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가 의사단체의 임원이기 이전에 의사였으며 또 의사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이었다면, 그는 비록 자기희생과 다수를 위한 헌신적 봉사와 지도자로서의 참된 모범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땅히 의사로서의 최소한의 위엄과 양식과 능력은 발휘되었어야 했으며 또 적어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인격과 품위 그리고 역사의식만은 갖추었어야 했다고 봅니다.
  나는 이런 분들을 볼 때 마다 실로 가장 비참한 의사의 한 샘플을 보는듯하여 가슴이 아픕니다.

                                          (월간「의학동인」, 8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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