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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 전문의

  어느 주말, D온천에서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승용차를 몰고 고속도로 상을 달리던 중 별안간 변속기어가 말썽을 일으킨 적이 있다.
  할 수 없이 주행선 밖으로 뽑아놓고 기어를 다시 넣어도 보고 앞덮개를 열어 여기저기 만져도 보고 시동도 새로 걸어보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간 운전은 그럭저럭 별 탈 없이 해왔지만 이런 노상고장, 특히 고속도로상의 말썽은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여간 낭패스러운 게 아니었다.
  결국은 얼마 후에 나타난 순찰차의 도움으로 견인차에 묶여 가까운 C시의 정비공장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마치 간밤까지도 멀쩡하게 걷던 젊은이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수족을 못 쓰고 앓아누워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가는 꼴이 된 셈이었다.
  차가 공장에 닿자 분야별 전문 정비사 두 사람이 퇴근하려다 말고 달려들어 교대로 몇 가지 조작을 해 보고는 대뜸, “전기 라인은 이상 없군!”  “디스크 파열인데...” 하며 각 각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는 전자의 전기 정비사가 후자의 디스크 정비사에게 “난 면했네, 자네가 수고 좀 하게. 먼저 퇴근 하겠네” 라고 말하며 사라지자, 후자는 체념 한 듯이 “할 수 없지. 내가 일복이 많은 모양이지” 하면서 이번에는 나를 향해서 “클러치 디스크가 깨졌습니다. 바꿔 끼우려면 밋션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자동차 구조학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이런 말 들이 모두가 생소한 것 이었는데 짐작 컨데 내과 질환은 아니고 외과 질환이며 수술을 해야 낫겠다는 말 인 것 같았다.
  그때 나로서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 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퇴근시간이니 웬만하면 내일 고쳐주겠다는 것을 겨우 사정해서 그 당장에 손 봐 주기로 양해 된 터이라, 수리시간과 비용정도 밖에는 더 묻지도 못했다.  
  차를 정비창으로 밀어 넣고 정비사가 밝은 조명 아래 이런저런 대수술을 행하는 동안 나는 줄곧 거기 지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두어 시간 동안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게 되었다.
  차의 발병과 그 진단 과정이 우리네가 다루는 질병의 그것과 어쩌면 그렇게도 유사하며 또 그 치료의 추진이나 수행과정도 우리네의 그 것과 어떻게 그렇게 비슷한지 실로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그런 한편, 갑자기 노상에서 병 난 자동차를 낯선 곳 에서 수술 받아야 했던 나의 처지나 심정 또한 우리네에게 병자를 맡기는 가족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을 것 이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말없이 내차를 고쳐주고 있는 그 디스크 전문의가 새삼 우러러 보였다.

                                         (의사신문 [행림소필], 8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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