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과 단아한 삶, 피 천 득
5월 25일 타계한 금아 (琴兒) 피천득(皮千得 )선생은 한국 현대 수필
1세대를 대표하는 수필가 겸 시인이자 영문학자다. 담백하고 향기로운 그의 글처럼 평생을 단아하고 순박한 삶으로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의
자녀 2남1녀중 장남 (피세영 11회)과 차남(피수영 13회)은 서울사대부고를 나왔다. 詩 두편을 소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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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 피 천 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오 월 - 피 천 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를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 愛情痛苦 失了 愛情痛告
(득료 애정통고 실료 애정통고)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e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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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식 후배님,
좋은 내용의 글을 보여주시어 고맙습니다.
무엇보다도 피천득선생의 두 아드님이 모두
우리 서울사대부고 동창이라니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