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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딸

  산모(産母)가 첫아기를 낳으려고 병원에 올 때 보면 대개 새 아기의 할머니 될 분이 따라오는데, 초산이면 아무래도 산모의 진통기간도 더 길고 고생도 더하기 마련이어서 상당히 오랫동안 산고를 지켜 본 연후에야 이윽고 응애- 하는 아기의 고고지성(呱呱之聲)을 듣게 된다.
  분만실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첫아기의 출생을 애타게 기다리던 할머니는 이 아기의 울음 신호에 활짝 반가운 표정이 되지만 금세 또 궁금해져서 못 견뎌 한다. 문틈으로라도 기웃대면서 「무얼 낳았어요?」 하고 소리치거나 아니면 「산모는 괜찮습니까?」하고 조급하게 묻는다.
  그런데 이런 경우를 자주 겪으면서 보니까 공교롭게도 이 질문에는 공통적인 데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무얼 낳았는가를 먼저 묻는 쪽은 의례히 시어머니이고 산모가 괜찮은가를 먼저 묻는 쪽은 대개 친정어머니이다. 시어머니는 새 아기가 손자인지  손녀인지가 우선 더 궁금한 반면에 친정어머니는 자기 딸의 순산과 건강 여부가 더 궁금한 것이다. 아마 이 시어머니도 출가한 그의 딸이 첫 아기를 낳는데 따라 갔다면 (친정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산모의 순산 여부를 먼저 묻게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친정어머니 쪽도 입장이 바뀌어 시어머니의 위치가 되었다면 역시 같았을 것이고.
  이러한 의식 차이는 아주 사소한 것이고 또 거의 무의식적인 반사행위이다.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이러한 사소한 의식의 차이가 자꾸 중첩되고 확대되어서 결국은 고부간(姑婦間)의 갈등의 불씨도 될 수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사고의 비약일까...
  며느리와 딸의 관계-나는 이 관계를 다만 투명한 유리창의 앞뒷면 관계에 불과하다고 보고 싶다. 창의 안쪽에서 본다면 이쪽이 유리의 앞면일 것이요 바깥쪽에서 본다면 그쪽이 또한 유리의 앞면일 따름이다. 오직 어느 쪽에서 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의 며느리도 그의 친정어머니에게는 딸이요 내 딸도 그의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이다. 내 며느리가 첫 아기를 고생해 가며 낳았을 때 그 안위 여부를 궁금해 하기보다 아들을 낳았는지 딸을 낳았는지를 더 궁금해 한다면, 어찌 출가한 내 딸만은 그의 시어머니가 새 아기의 손자 여부 보다 내 딸의 안위를 더 염려해 줄 것으로 기대하겠는가.
  서로 서로 「며느리=딸」의 의식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 아닌가.

                                       (의사신문 [진료실주변], 77.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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