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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성인서점

  다음날 아침 나는 마침내 그 서점 앞에 이르렀다. 전날 저녁 교포 P씨와 함께 <다운타운>을 둘러 볼 때에, 총천연색 네온불빛을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며 흥미를 끌던 이 거리의 상점들 중에서 특히 나의 눈길을 묶어 놓았던 바로 그 성인서점이었다.
  요염한 여인의 나체그림이나 요부를 <하트 팻취>로 가린 누드사진 등도 그러려니와 요술 집 같이 생긴 세 개의 출입문에 문마다 아덜트무비니, 아덜트부크니 스타디오니 하는 표지가 차례로 붙어 있었던 것 등이 나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문 앞에 이르자 <이 지역에는 험악한 멕시칸들과 검둥이들이 득실대고 있어서 해가 저문 뒤에 얼씬하다가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겁주던 P씨의 말이 자꾸 떠올라서 냉큼 들어서지를 못했다.
  주저하던 나는 결국 거기서 오륙십 보쯤 떨어진 지점으로 옮겨가 서서 이 집으로 드나드는 이의 동정을 한참동안 살펴보았다.
  곱슬머리 금발의 건장한 청년, 한 쌍의 젊은 연인, 40대쯤의 멕시칸 남자 두 명, 검둥이 한패 세 명, 허름해 보이는 노신사(?), 작달막한 키의 동양인 남자, 젊고 예쁘장한 노랑머리 여자 등... 그야말로 층하가 없는 모든(?) 사람들이 거침없이 들어간다.
  그런데 얼마동안을 지켜보는 동안에 나오는 사람은 도무지 하나도 없다.
<역시 험악한 곳이어서 인가?>
  얼마를 더 지켜보았을까.... 드디어 앞서의 동양인이 나오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으젓한 걸음걸이로 길을 건너가 버린다.
  <그렇구나!  아무 일도 없이 살아(?) 나오는구나!>
  나는 그제서야 용기를 내서 서서히 서점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여차하면 되돌아 뛰쳐나오기라도 할양으로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서 겉으로는 태연하게 가운데의 아덜트부크 문을 밀고 들어섰다.
  밝은 조명아래 울긋불긋한 책들이 한눈에 꽉 차 들어오는데 실내에는 다른 손님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아주 한적하기만 하다.
  너무 조용해서 좀 기분이 나쁠 정도였지만 내친걸음이라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니 삼면의 벽과 중앙의 서가는 온통 요란스런 표지를 한 누드화집(畵集)과 섹스잡지로 겹겹이 채워져 있고 입구 쪽 카운터 뒤에는 점원 인듯한 앳된 아가씨 하나가 앉아서 책을 보는지 새 손님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나는 얼마동안 이쪽저쪽에서 잡지들을 뒤적여 보면서 겁먹었던 마음을 얼마간 가라앉힌 다음에 카운터 쪽의 진열장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갖가지 영사용 필름이며, 스틸사진, 실물에 방불한 남녀용 유희도구(遊戱道具)들, 녹음테이프, 특수용 향수, 국소도포제(局所塗布劑)등등... 듣도 보도 못하던 별의별 진귀한(?) 상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제서야 점원 아가씨는 상냥하게 말을 걸어온다.
  「네? 아니 뭐...그저 구경 좀..., 그런데 영화는 어디서 합니까?」
  「저쪽이에요」
  그가 가리키는 쪽을 돌아보니 그쪽의 어둠 속에는 <25센트 영화>와 <극장>의 암등(暗燈)표지가 희미한 불빛을 흘리고 있고, 한쪽 벽에는 <경이의 섹스 스타 마리 자넷트가 주연하는 "뜨거운 목구멍" 드디어 개봉박두!>의 선전포스타가 걸려있다.
  나는 거기서 더 이상 어둠속을 탐사해 볼 용기를 발휘하지 못했다.
  아까 그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 멕시칸이며 검둥이들이 그 안에 숨어 있다가 내 옆구리에 <잭크나이프>라도 불쑥 드려 밀것만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한일의보, 78.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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