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보 수필집]"네오 히포..."抄(21): 중국의 화장실 문화

by 심영보 posted Jul 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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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화장실 문화

  외국 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 가장 걱정스러워 하는 것이 보통은 언어소통과 음식의 문제인데, 중국에 대해서만은 유달리 화장실(또는 공중변소)에 관한 것이 우선으로 꼽히고 있어서 여행안내서 조차도 칸막이 없이 공개된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아야 한다거나 휴대용 휴지와 물수건 그리고 손전등을 준비해야 한다는 등으로 미리 겁을 먹게 하고 있다.
  이러한 악소문은 특히 작년의 북경 아시안 게임에 다녀온 많은 여행객들이 얼마간 과장해서 퍼뜨려서 더욱 굳어진 감이 없지 않다.
  이번 우리의 중국 여행팀에 끼이기로 했던 Y씨가 지레 겁을 먹고 동행을 일찌감치 포기한 것도 실은 이 화장실 문제 때문이었다. Y씨는 다소 노년이기도 하지만 지병 때문에 밤에 자주 용변을 해야 하는 형편인데 화장실에 관한 이런 저런 불안 때문에 감히 따라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이다. 그러나 우리 일행 20여명이 12박 13일 동안 중국의 각지를 여행하면서 겪고 본 그곳의 화장실들은 일부의 농촌지역을 제외하고는 소문처럼 그렇게 못 견디게 불편한 것은 아니었고, 또 농촌의 그것도 우리네 농촌의 지난날의 그것들과 견주어 볼 때 따로 손가락질 할 것도 못되는 난형난제(難兄難弟)의 그런 것이었다.
  우리 일행이 숙소로 정했던 대도시(계림. 서안. 북경 등) 특급 호텔들의 화장실은 더 부연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세계적인 고급 수준이었다.
  최근 수삼년 사이에 급속도로 확대된 중국 개방정책에 힘입어 물밀듯이 밀려드는 사업가와 관광객들을 소화하기 위하여, 그리고 작년에 개최한 북경 아시안 게임에 대비해서 중외합영(中外合營)으로 건설한 이런 특급 호텔들의 시설은 물론 운영과 서비스 까지도 세계적인 수준이었음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면 공공장소나 공공시설물 내의 화장실이나 관광지등의 공중변소는 어떠하였는가?
  우리가 거친 대도시 국내선 공항(광주. 계림. 서안. 북경. 연길. 심양 등)의 모든 세수간(또는 세수소/손 씻는 데가 있는 화장실)은 사용자가 아무런 불안도 느끼지 않고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적당한 높이의 칸막이와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었고 다만 손 씻는 시설만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이 일부에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밖에도 그동안 돌아 다녀본 식당(서안의 수령찬청), 극장(연길의 연변예술극장), 병원(연길의 연변의학원 부속의원과 심양의 요녕중의학원 부속의원), 유람선(계림의 이강유람선), 카페(서안), 가라오케 술집(연길) 등의 세수소 또는 측소(또는 측간/손 씻는 데가 없는 화장실)도 거의 그와 비슷한 수준의 시설내용이어서 일부의 곳에서만 수세식 시설로 되어있었고 청결의 정도는 그 시설장소의 성격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관광지의 공중변소는 크게 2가지로 대별 되는 것 같았다. 그 하나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을 의식해서 시설한 것으로 보이는 유료화장실로서 비록 수세식은 아니었지만 4면이 가려진 용변처를 마련하고 건물 입구에서 두루말이 화장지 서너 토막을 떼어 주며 휴지대 1각(10분의 1원/한화로 약 15원)을 징수하는 여자 복무원이 지키는 곳이고(북경의 자금성고궁박물원, 서안의 병마용박물관과 비림박물관...등), 다른 하나는 주로 중국인들이 이용해 온 전통적인 측소로서 양옆의 낮은 격벽과 바닥의 사각 구멍만 있을 뿐 출입문이 없어 들어앉으면 전면이 휑-하니 개방되어 있는 그런 곳이다(심양의 북능공원, 서안의 탄시부식품시장 등 대부분 장소의 공중변소).
  이 후자의 측소가 외래 여행객들에게는 당혹스러운 것이었고 또 악소문의 진원지도 바로 이것 이었던 것 같다.
  여행안내서는 후자의 측소를 가리켜 중국인들의 공동회의장이요 사교장소라고 다소 미화해서 표현했는데, 그것은 마치 우리네가 골프장을 사교의 장(場)으로 꼽는 이유 중의 하나가 골프 친 뒤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 서로 벌거벗은 모습들을 보여 가며 샤워하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최소한의 용기와 배짱만 있다면, 아니 용변이 가장 절실한 당면사라면 앞문이 열린 화장실이라고 일을 못 볼 이유도 없으며 말이 서로 통하는 한 제 앞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다음 손님과 대화를 나누지 못할 까닭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측소도 남녀유별은 지켜지고 있음에랴.
  중국의 화장실 가운데 많은 방문객들을 당황하게 하고 불편하게 했던 것은 아무래도 농촌지역의 그것이었을 것이다.
  우리 여행팀이 겪은 것만 하더라도 양삭. 계림간의 귀로에서 들르게 된 농촌의 화장실이나 연길에서 용정. 화룡. 송강. 백하를 거쳐 백두산(장백산)을 오가던 길가의 작은 음식점이나 농가의 화장실이 모두 그랬다.
  엉성한 3면의 짚 벽 또는 판자벽에 앞막이(출입문) 거적이 있거나 없거나 이고 바닥은 커다란 오물통이나 흙구덩이 위에 발판나무 두 쪽만 걸쳐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지저분한 풍경을 더 이상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으니 우리네 농촌이 20여 년 전 새마을운동을 전개하기 이전의 시대에 갖고 있던 화장실을 상상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으로 대신 하겠다.
  그리고 우리의 백두산행 4시간여의 버스여로 중간에는 이 나마의 화장실조차도 찾지 못하여 대자연을 바라보며 직접 시비(施肥)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몇 차례나 있었음도 고백해 둔다.
  일행 중의 남자들이야 그런대로 스스럼없이 배설지락(排泄之樂)을 누렸다고 하겠지만, 여성 동행자들에게는 아주 큰 곤욕이었음이 분명하니 일생일대의 추억거리가 된 것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집 「30년의 추억」, 9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