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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 오르다

  우리 내외가 여름휴가를 제주도로 갔던 것은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그때 우리는 그곳 행사의 공식 관광코스를 다 돌아보고 나서도 일정이 하루 남았길래 한라산을 당일코스로 등반하기로 욕심을 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아직 30대 후반의 나이를 의식하고 싶지 않던 때였고 마침 날씨도 드물게 보게 쾌청했다.
  새벽 5시에 우리는 가장 간편한 복장과 운동화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우리가 휴대한 것이라고는 2인 한 끼분의 빵과 플라스틱 물병 그리고 수건과 약간의 돈 뿐이었다. 어리목 코스로 오르기로 하고 입구까지는 택시로 갔다.
  어리목산장(山莊)에 이르러 등산신고를 하니 관계관이 우리 행색을 보고는 좀 의아해 했으나 여의치 않으면 아무 때고 중도에 하산 하겠다고 안심 시킨 뒤 등산길에 올랐다.
  사제비동산과 만세동산 그리고 철쭉 밭을 거치는 길고 긴 오름길은 별로 가파르거나 험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너무 지루하였다.
  그리고 정상 가까이에 이르러서 윗세오름의 가파른 코스와 마지막 서북벽(西北壁)의 암벽(岩壁)타기 코스는 가장 힘든 부분이었는데 그것도 바로 눈앞에 다가선 목표고지를 정복한다는 의욕 때문에 어렵잖게 견뎌낼 수 있었다.
  드디어 우리는 1950미터의 정상에 올랐고 그리고 우리의 의지의 승리에 감격하였다.
  장정들 못지않게 우리도 아직은 활력 넘치는 젊은이 임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서로 기뻐하였고 또 이제 우리나라의 최고봉을 발아래 두었으니 더 바라볼 높은 산이 없다면서 함께 대견해 하였다.
  우리는 정상의 표석 앞에 나란히 앉아 잠시 쉬면서 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는 이내 분화구로 내려와 백록담 맑은 물에 손을 한번 담궈 보고는 곧바로 동쪽 벽을 타고 내려 성판악코스로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하늘은 우리에게 행운만을 약속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진달래 밭에 이르러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중 허리쯤에는 뽀얀 안개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서 성산일출봉이나 서귀포를 조망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길 따라 더 내려오면서 안개비가 옷깃을 적시는가 하더니 마침내 사라오름 쯤 부터는 제법 굵은 빗줄기로 변했다.
  산악의 기후가 천변만화하다지만 산위에서 보았던 두꺼운 구름층이 쉽게 걷힐 것 같지도 않았고 또 돌아갈 비행기 시간예약 때문에 늑장 부릴 수도 없어서 비를 그대로 맞으며 계속 내려왔다.
  겨우 속밭에 이르러서야 비를 모면했는데 거기서 위쪽을 올려다보니 산은 아직도 허리 언저리에 뽀얀 구름 띠를 걸치고 있었고 그 밖으로는 햇볕이 쨍쨍 쬐었다.
  10시간 이상의 강행군 산행 길에 지친 우리가 성판악에 도착하여 제주행 버스에 올랐을 때는 입고 있는 옷은 이미 꾸덕꾸덕 말라 있었고 비행기 시간은 매우 촉박해 있었다.
  이제 다시는 엄두도 못내 볼 젊어서 한때의 여름 휴가였다.

                                                    (후생신보, 8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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