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病床)에서
이 한 달 동안 알부민을 벌써 열일곱 병째 맞았는데도 별 차도가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속인가. 처음엔 만성간염(慢性肝炎)이라더니 뭐 경변(硬變)증세도 좀 있다는 소리는 뭔지. 그럼 암(癌)??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아니야!!
왜 진작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가. 내가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었던가. 8년 전엔가 Y선배가 병석에 있어 문병했을 때 그분이 한말도 바로 그 말이 아니었던가. 「나도 의사지만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건강」 이라고. 그때 그분은 낮의 공직생활과 저녁의 자그마한 의원경영을 함께 한 것이 결정적으로 건강을 해쳤다고 하면서 그간 뼈를 깎으며 애써 모아 놓았던 재산을 2~3년 사이의 병석에서 모두 까먹고는, 제살을 베어 만든 재보(財寶)로도 제살을 다시 이루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지 않았던가. 그 말을 듣고 심각하게 수긍하고 납득만 했었지 스스로 명심 결행까지는 못하였으니 어찌 진실로 깨달은 것인가. 어찌 어리석음이 이토록 깊었던가.
오늘도 담당 레지던트는 배를 몇 번 눌러본 뒤 눈꺼풀을 젖혀 보고는 몇 마디 묻기만 하고 나가 버렸으니 그의 얼굴표정으로 보아 호전(好轉)도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는 거나 아닌지. 복수(腹水)를 다시 빼어보고 싶으면서도 내가 눈치 챌까봐 꾸무럭거리고 있는 거나 아닌지, 아무래도 요 몇 일사이 간(肝)이 눈에 띄게 더 커진 것도 같고 배도 더 불러진 것 같은데 담당의사는 자꾸 아니라고만 하면서 슬금슬금 피하는 것 같으니 더욱 수상하지 않은가. 저녁에 차트라도 슬쩍 들춰 볼까. 아니야 거기 엄청난 거라도 써 있으면 어쩌려고. 혹시 암 인걸 내겐 속이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랬다간 나는 파멸이다. 그 절망을 어떻게 견디어 낸담. 아니다. 내 차트를 딴 것들과 함께 놓아두지도 않았을 게다. 설혹 놓아두었기로 사실대로 적어 놓지도 않았을 게다. 언제고 내가 들춰 볼 경우를 대비했겠지.
아! 답답하구나, 나는 왜 이렇게도 불행하단 말이냐. 평균수명만
산대도 아직 20년은 더 살아야 하지 않는가, 모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왜 좀 더 멋있게, 좀 더 떳떳하게 살아오지 못했던가, 왜 좀 더 폭넓게 살아오지 못했던가, 남들처럼 아이들 손잡고 어린이대공원에라도 자주 가지 못했던가, 아내와 함께 외식이라도 가끔 나가고 극장구경이라도 좀 다니지 못했던가, 친구들이 어울리는 야유회에도 가끔 나갔어야 했을 걸, 이웃 의사들이 권하는 테니스도 진작 시작했더라면 아마 지금 이렇게 건강 걱정은 안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불우한 이웃을 돕자고 성금을 낼 때도 뒷전으로 돌고, 어려운 환자에게도 꼬박꼬박 다 받아 내려고만 했었지, 단체(團體)가 하는 일에, 나라가 하는 일에, 나는 불평만 해왔지 뭐 나서서 도와주지는 못하지 않았던가.
부모-처자-이웃-친구들-나라-민족... 아-나는 이들을 위해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남의 손가락질도 개의치 않고 악착같이 벌어 모은 게 몇 채의 집, 몇 백 평의 땅, 몇 만평의 야산, 시세가 좋아져서 억대부자가 될 것만을 생각해 왔던 게 아닌가, 죽어 한 평 차지도 못 할걸 무엇 하려 그렇게 욕심을 냈었던가,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게 애정의 표시라고 생각되던 시절도 이제는 가지 않았는가.
후회한들 무슨 소용. 죽으면 모든 게 끝장인 것을. 죽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던지 살아나야 한다. 이런 후회스런 지난날을 몽땅 만회하기 위해서도 살아나야겠다.
제발 암만은 아니어라. 아니 설혹 암이더라도 할 수 없으니 다만 몇 년이라도 더 살 수 있는 양성세포형(良性細胞型)이어라. 그래서 내가 다시 깨어난 새로운 삶을 모든 주위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시간만 다오.
신이여! 이 마지막 소원만이라도 청허하여 주소서.
(후생신보 [신년수상(픽션)], 77.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