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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아홉 굽이

  사람의 사고능력이 대단히 치밀하고 섬세하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실제로 해부학(解剖學)이나 생리학(生理學)등을 배우는 동안에 그럴 만도 하다고 수긍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감각이 엉뚱하리 만큼 우둔하고 어리석은 경우를 이따금 겪다보면 어처구니  없음에 실소하게 된다.
  나는 우선 여기서 사람들이 수치나 수량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인식이 얼마나 막연하고 허황된 것인가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내가 6.25때 가족을 따라 피난 갔던 가평의 어느 두메산골은 서울 가는 지름길에 높은 산을 하나 넘게 되어 있었는데 이 산길의 별명이 「아흔 아홉 굽이」였다. 몇 번 넘나드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느라고 산길이 꼬부라질 때마다 헤어봤더니 오름길의 중턱에도 미치기 전에 이미 아흔 아홉을 넘겨 버려서 그만 헤이기를 포기하고 말았었다.
그때가 중학시절이었으니까 아주 단순하고 고지식한 마음에 그 숫자가 일치할 것으로 기대했다가 실망한 예인데, 그 뒤 어느 지리교사로부터 들으니 원시에 가까울수록 수의 상한을 흔히 아홉(9)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고 점차 99까지 발전한 것이라 하며 우리나라 어느 두메산골엘 가더라도 아흔 아홉 굽이는 많이 있다는 것이다. 헤일 수 없을 만큼 많은 굽이굽이를 그저 막연히 아흔 아홉으로 표시한 예일 것이다.
  또 내가 군(軍)의 최전방에서 근무할 때 겪은 얘기인데 입대한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제대를 얼마 앞둔 고참병들이 수하의 병졸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많이 고참인가를 과시하는 말로 내가 여태껏 먹은 콩나물을 모두 연결하면 고향까지 가고도 남는다고 큰소리치는 것을 흔히 들었다. 그러나 이 말도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엉터리인가는 곧 알 수가 있다. 만 3년 동안을 하루 3끼마다 콩나물국을 먹었다고 가정하고 그릇마다 평균 15cm길이의 콩나물이 100올이 들어있었다고 넉넉잡더라도,
15cm×100올×3끼×365일×3년 = 약 49.3km로
120리 남짓밖에 안되니 그때 내가 있던 철원 전방으로부터는 겨우 운천 쯤에나 갈까였던 것이다. 그러나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거의 그런 수량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는 갖지 않고 그대로 막연히 받아 들였던 것이다.
  또 몇 년 전까지도 가끔 말썽이 되어 온 행운(幸運)의 편지라는 것도 비슷한 예이다. 한사람이 20명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각각 다시 20명에게 같은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재앙이 온다는 식의 다분히 협박이 깃들인 幸運(?)의 편지는 얼핏 생각하면 대단치 않은 파급으로 여겨지지만 기하급수(幾何級數)적인 증가는 아주 무서운 것이어서 한사람으로 부터 시작되었더라도 2대에 20명,3대에 400명, 4대면 8000명...그래서 7대에는 6400만 명이 되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도 우리나라 총인구가 두 번씩 받고 또 보내야 하는 수치에 이르르며, 나아가서 9대만 되어도 256억 명이 되니 전세계인구가 각각 7번씩은 받고 보내야 하는 엄청난 수가 되는 것이다. 나도 오래전에 한번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받은 것이 21대인가 였으니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나를 알 수 있겠다.
  최근 항간에 물의를 빚었던 소위 피라밋형 연쇄 계의 경우에서 보면 이러한 약점을 사기행위에 악용한 예이고 또한 시민들은 이에 속아 넘어간 경우인 것이다. 비록 1명에서 2명으로, 2명에서 4명으로...식으로 대단찮게 늘어 나는듯 하지만 3000원(그중 1000원은 회사 측에 불입)을 낸 사람이 256,000원을 타기까지 8대가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하급수로 자꾸 늘어나는 불입자 전원이 곗돈(256,000원)을 타기 위하여는 이 계(契)가 무한대(無限大)로 계속되어야만 한다. 중복해서 가입하지 않은 한 25대에 이르러 우리나라 전인구가 가입하여야 지속되며, 만약 그 이후의  계속 가입이 불가능하다면 19대 이후의 가입자(절대다수인 3,329만 여명)는 3,000원씩 내고서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혹 계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18대 이전에 가입해서 계를 타먹은 사람이 또 중복해서 가입한다고 치더라도 그가 이미 먼젓번에 탄돈 256,000원을 3,000원씩으로 모두 쪼개서 다 털어 넣도록 자기가 다시 탈 차례는 오지 않는다.
  그것은 회사 측에 불입하는 1,000원 때문이다. 만약 어리석은 자가 있어 다시 더 계돈을  계속 넣는다면 이 계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유지되겠지만 가입자의 손해는 점점 더 커지고 그 동안에 회사는 가입자의 손해액만큼씩 치부(致富)하고 있을 것이다. 비교적 단순한 수학이다. 그러나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이라도 보겠다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덤벼들었다면 이들은 아마 「아흔 아홉 굽이」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람의 사고능력이나 감각이 한편 치밀하면서도 이렇게 우둔하고 어리석은 일면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늘 경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이 될 만도 하다.

                                           (「남북의료기」, 7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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