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보배를 찾아서(2)]

(2) 소록도(小鹿島) <전남 고흥>
작은 사슴 모습을 한 섬이래서 “소록도”라고 이름 붙였다는데,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소록도는 <문둥이 수용소>로만 알려져 있어 1916년 이래 마치 금단의 땅으로 인식되어 온 게 사실입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문둥병(한센병)]은 완전히 정복되었고 오직 [한센인] 또는 [한센 후유장애인]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녹동항(鹿洞港) 선착장> 드디어 소록도가 매우 아름다운 경치의 섬이라는 사실이 소문나면서 이 섬을 향하는 관광객의 수도 자꾸 늘어만 간다고 합니다.
그림은 어느 주말 아침에 고흥반도의 끝자락 녹동항에서 소록도행 배를 기다리고 있는 관광객들 입니다.

<애환의 추모비 등> 섬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앙공원]은 한센인들이 꾸며놓고 외래의 관광객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게 한 모두의 휴식처 입니다. 거기에는 소록도 100년의 역사를 가늠하게 하는 여러 가지 기념비와 표지물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특히 따뜻했던 병원장이나 간호사들 종사자들에 대한 애정 넘치는 비석으로 부터, 그들의 팔을 비틀어 세워놓고 날마다 참배하게 했던 그래서 바로 그 비석 앞에서 칼에 맞아 죽은 어느 병원장의 “송덕비”가 세워졌던 자리의 표지물에 이르기 까지... 방문자는 새삼스러운 감회에 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하운(韓何雲)의 시가 새겨진 커다란 바위는 한센인들의 애환을 바위만큼 무겁게 대변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지척(指尺)의 녹동항> 5~6분 만에 건너가 닿은 소록도 선착장에서 뒤돌아 본 녹동항은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이 섬에 갇혀 살던 수 만명의 한센인(문둥병환자와 그 후유장애인)들이 품었던 서릿발 같은 한(恨)을 이 작은 바다가 어찌 다 보듬었겠으며, 강제수용 시절에는 갇혀서 건너갈 수 없었고 그게 풀린 시절(1964년 이후)에는 받아주는 이가 없어 건너가 살지 못하는 이 지척의 육지가 어찌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보였겠습니까?

<고흥반도-소록도-거금도 연육교(連陸橋)> 고흥반도(高興半島)에서 시작한 연육교는 바야흐로 소록도에 닿았고 이어서 거금도(居金島)까지 뻗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개통은 되지 않았으나 미구에 (아마 2009년 상반기에)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육지인들이 더 쉽게 왕래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연육교보다 더 튼튼하게 이어간다면 더 이상의 [당신들의 천국](작가 이청준-李淸俊이 소록도를 주제로 쓴 장편소설의 제목)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봅니다.

(3) 서재필기념관(徐載弼紀念館) <전남 보성>
<개화문과 사당>
구한말 개화(開化)와 개혁(改革)을 앞장서서 외치다가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미국으로 망명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醫師)가 되었던 독립운동가 송재(松齋) 서재필 박사(1866~1951)의 생가를 찾아가던 중에 그 초입에서 최근(08.7월)에 개관한 서재필기념관을 만났습니다. 넓은 터 왼편에 전시관과 동상이 서 있고, 그 맞은편에는 실물대로 복제해 놓은 독립문이 서 있으며, 정면의 개화문(開化門)과 자강문(自彊門)을 지나면 사당(祠堂)과 재실(齋室)이 있었습니다.

<전시실과 독립문(복제) 그리고 조각공원>
서재필 박사의 일대기를 가늠할 수 있는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전시 1,2실과 실물 크기의 독립문(복제품) 그리고 큰 길 건너에 조성된 서재필기념조각공원 등은 서 박사가 우리 역사에서 얼마나 큰 인물이었나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누구도 아직 이만한 규모의 기념관을 가진 이가 없을 정도 입니다.

(4) 대원사(大原寺)와 티벳박물관 <전남 보성>
<대원사(大原寺)> 천봉산(天鳳山)아래의 칠지가람(七池伽藍) 대원사는 경내 옥외에 태안지장보살(胎安地藏菩薩) (그림 중앙)을 안치하고 그 주위에 많은 동자석불(童子石佛)을 배치한 아주 독특한 사찰이었습니다. 잉태된 때로부터 태어날 때까지의 태아의 안녕을-따라서 잉태는 되었으나 새 생명으로 피어나지 못한 태아의 극락왕생까지도 염원하는 부처를 모신 곳이었습니다.

<티벳박물관> 대원사의 지금 주지 스님이 소시 적에 인도에 유학하던 시절, 티벳불교(라마불교)의 최고 지도자 [다라이 라마]와 만났던 인연을 계기로 수집하기 시작한 티벳 미술품과 라마불교 용구 용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이 박물관은, 라마불교의 중요 이념이기도 한 [조장(鳥葬)(또는 천장-天葬)]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진을 여러 장 전시해 놓은 한편에는 [죽음체험실]도 마련해 놓아 (그림의 왼쪽 아취 안쪽) 미리 유언을 쓰고 관(棺)에 들어가 누워 독경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빠지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의미를 보다 심각하게 실감하게 하는 소재인 것 같습니다. (2) 끝.

(2) 소록도(小鹿島) <전남 고흥>
작은 사슴 모습을 한 섬이래서 “소록도”라고 이름 붙였다는데,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소록도는 <문둥이 수용소>로만 알려져 있어 1916년 이래 마치 금단의 땅으로 인식되어 온 게 사실입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문둥병(한센병)]은 완전히 정복되었고 오직 [한센인] 또는 [한센 후유장애인]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녹동항(鹿洞港) 선착장> 드디어 소록도가 매우 아름다운 경치의 섬이라는 사실이 소문나면서 이 섬을 향하는 관광객의 수도 자꾸 늘어만 간다고 합니다.
그림은 어느 주말 아침에 고흥반도의 끝자락 녹동항에서 소록도행 배를 기다리고 있는 관광객들 입니다.

<애환의 추모비 등> 섬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앙공원]은 한센인들이 꾸며놓고 외래의 관광객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게 한 모두의 휴식처 입니다. 거기에는 소록도 100년의 역사를 가늠하게 하는 여러 가지 기념비와 표지물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특히 따뜻했던 병원장이나 간호사들 종사자들에 대한 애정 넘치는 비석으로 부터, 그들의 팔을 비틀어 세워놓고 날마다 참배하게 했던 그래서 바로 그 비석 앞에서 칼에 맞아 죽은 어느 병원장의 “송덕비”가 세워졌던 자리의 표지물에 이르기 까지... 방문자는 새삼스러운 감회에 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하운(韓何雲)의 시가 새겨진 커다란 바위는 한센인들의 애환을 바위만큼 무겁게 대변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지척(指尺)의 녹동항> 5~6분 만에 건너가 닿은 소록도 선착장에서 뒤돌아 본 녹동항은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0년 동안 이 섬에 갇혀 살던 수 만명의 한센인(문둥병환자와 그 후유장애인)들이 품었던 서릿발 같은 한(恨)을 이 작은 바다가 어찌 다 보듬었겠으며, 강제수용 시절에는 갇혀서 건너갈 수 없었고 그게 풀린 시절(1964년 이후)에는 받아주는 이가 없어 건너가 살지 못하는 이 지척의 육지가 어찌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보였겠습니까?

<고흥반도-소록도-거금도 연육교(連陸橋)> 고흥반도(高興半島)에서 시작한 연육교는 바야흐로 소록도에 닿았고 이어서 거금도(居金島)까지 뻗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개통은 되지 않았으나 미구에 (아마 2009년 상반기에)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육지인들이 더 쉽게 왕래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연육교보다 더 튼튼하게 이어간다면 더 이상의 [당신들의 천국](작가 이청준-李淸俊이 소록도를 주제로 쓴 장편소설의 제목)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봅니다.

(3) 서재필기념관(徐載弼紀念館) <전남 보성>
<개화문과 사당>
구한말 개화(開化)와 개혁(改革)을 앞장서서 외치다가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미국으로 망명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醫師)가 되었던 독립운동가 송재(松齋) 서재필 박사(1866~1951)의 생가를 찾아가던 중에 그 초입에서 최근(08.7월)에 개관한 서재필기념관을 만났습니다. 넓은 터 왼편에 전시관과 동상이 서 있고, 그 맞은편에는 실물대로 복제해 놓은 독립문이 서 있으며, 정면의 개화문(開化門)과 자강문(自彊門)을 지나면 사당(祠堂)과 재실(齋室)이 있었습니다.

<전시실과 독립문(복제) 그리고 조각공원>
서재필 박사의 일대기를 가늠할 수 있는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전시 1,2실과 실물 크기의 독립문(복제품) 그리고 큰 길 건너에 조성된 서재필기념조각공원 등은 서 박사가 우리 역사에서 얼마나 큰 인물이었나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누구도 아직 이만한 규모의 기념관을 가진 이가 없을 정도 입니다.

(4) 대원사(大原寺)와 티벳박물관 <전남 보성>
<대원사(大原寺)> 천봉산(天鳳山)아래의 칠지가람(七池伽藍) 대원사는 경내 옥외에 태안지장보살(胎安地藏菩薩) (그림 중앙)을 안치하고 그 주위에 많은 동자석불(童子石佛)을 배치한 아주 독특한 사찰이었습니다. 잉태된 때로부터 태어날 때까지의 태아의 안녕을-따라서 잉태는 되었으나 새 생명으로 피어나지 못한 태아의 극락왕생까지도 염원하는 부처를 모신 곳이었습니다.

<티벳박물관> 대원사의 지금 주지 스님이 소시 적에 인도에 유학하던 시절, 티벳불교(라마불교)의 최고 지도자 [다라이 라마]와 만났던 인연을 계기로 수집하기 시작한 티벳 미술품과 라마불교 용구 용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이 박물관은, 라마불교의 중요 이념이기도 한 [조장(鳥葬)(또는 천장-天葬)]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진을 여러 장 전시해 놓은 한편에는 [죽음체험실]도 마련해 놓아 (그림의 왼쪽 아취 안쪽) 미리 유언을 쓰고 관(棺)에 들어가 누워 독경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빠지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의미를 보다 심각하게 실감하게 하는 소재인 것 같습니다. (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