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내경(內景)은 어떠한가?
여신상의 내부로 들어가는 길은 기단부 후면의 지층에 있었는데 입구로 들어서니 넓고 높은 홀이 펼쳐지고 그 한복판이 휴게실, 주위에 안내실과 기념스탬프 찍는 곳, 우표 파는 곳 등이 있고 홀의 2층 베란다는 이 기념물의 연혁이며 건립과정 등을 사진과 설계도 등을 곁들여서 소상히 설명해 주는 작은 전시장으로 되어있다.
여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신상의 기저부에 오르니 동상의 텅 빈 몸통 속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외벽은 굴곡진 동판(옷자락의 내면)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중심부에는 머리 부분에까지 이르는 10여 층 높이의 철제계단이 나선형으로 설치되어 있다.
행렬을 따라 여기까지 이르기는 하였으나 마치 남의 감춰진 비경, 아니 신성한 여인의 온몸 구석구석을 남몰래 드려다 보기라도 하는 것 같아 떳떳치 못한 듯한 기분까지 일었으니, 모르긴 몰라도 이런 종류의 구조물이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에 축조된다고 가정한다면 그 시비가 족히 인구에 회자하리라고도 추측되었다.
아무튼 이역만리에서 천금의 값어치로 얻어진 이 기회에 딴 생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줄 이은 관광객들 틈에 묻혀서 좁고 가파른 1백68개의 계단을 빙글빙글 돌면서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구경 온 어린이들은 신기한 미로놀이라도 한다는 듯이 신들이 나서 소리 지르며 뛰어 오르내리니 계단 길은 혼란하기 이를 데 없어서 앞 사람의 구두가 다음 사람의 코를 걷어찰 정도인데 한 여름의 밀폐된 동판 통속은 찜통을 방불한 푹푹 찌는 더위로 얼굴과 등허리에서는 땀이 냇물 흐르듯 흐르고 숨은 헉헉 막혀오는 것이 마치 “자유”의 정상에 이르는 시련의 길이기라도 한 듯 했다.
어찌 그만한 부자 나라에서 에어컨 시설을 해놓지 않았는지 심히 의문스러웠다.
그러나 어쨌든 끝은 있어서 땀 닦던 수건을 두 번째 짜낼 무렵에 드디어 주위가 갑자기 더 환해지면서 두어 평 남짓의 공간에 다다르니 여기가 동상의 머리 부분이어서 몇 개의 창문(크라운의 보석 자리)으로부터는 밝은 햇빛과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와 고행자의 노고를 위로라도 하는 듯 온 몸에 휘감긴다.
창구 앞으로 다가가서 외계를 살펴보니 뉴욕시가 자욱한 안개 속에 까마득하게 전개되어 있고 그 앞 항구에는 몇 척의 배가 점점이 한가롭게 떠 있다.
상쾌한 바닷바람을 더 즐길 여가도 없이 밀려드는 뒷사람에게 자리를 넘기고 돌아서니 작은 돔처럼 생긴 크라운의 내벽이 또한 눈길을 당기는데 그것은 벽과 천정의 곳곳에 손길이 닿을 만 한데는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 가지각색의 낙서가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죤.A.허드슨, 76.8.10>, <드디어 성취하다, F.코린스>, <결혼기념방문 H.잭슨 부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스칼파노>... 등의 기념낙서를 비롯해서 <아! 얼마나 갈구하였던가!>, <크라운에 박힌 7개의 가시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 <가장 완벽한 자유는 운전하는 동안과 화장실에 있을 때 뿐, 어느 남편>, <75년간 밝혀온 횃불은 자유를 구가하는 것이냐? 아니면 절규하는 것이냐?>... 등 무슨 깊은 사연이라도 토로하려는 듯한 익명의 낙서들이 그것이다.
하행 길에 접어들어 이런 문구들의 숨은 뜻을 음미해 보는 나의 심정은 그 어느 때 없이 착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