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문화의 중심지로 일컬어지는 뉴욕, 그 중에서도 브로드웨이 하면 누구나 연극을 연상하리만큼 이 거리에는 많은 극장이 도열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슨 연극이 롱런을 했느냐 또는 어느 배우가 데뷔를 했느냐 하는 것 등이 곧 세계 문화계의 관심사가 된다.
그런데 내가 이 방면에 문외한이고 국내에서도 연 2~3회 정도의 관극기회 밖에는 갖지 못하던 주제에 일시나마 감히 브로드웨이 연극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거리의 어느 허름한 게시판에서 눈을 끄는 한 포스터를 발견한 때문이었다.
그것은 전라의 출연자들이 군무하고 있는 장면의 몽타주 사진을 배경에 깐 <오- 칼캇타>의 선전 포스터였다.
이미 두어해 전부터 해외단신을 통해서 센세이션이 연일 전달되어 오던 저 유명한 나체연극 <오- 칼캇타>가 아직도 계속 공연 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표는 이미 여러 날 앞의 것까지가 매진이어서 나의 일시적인 흥분은 그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K선배는 나의 이 애석해하는 사정을 듣고 이렇게 위로하였다.
『미리 연락했더라면 표를 사뒀을 걸 그랬어요. 아마 일주일 전에는 사야 했을 거예요. 그 대신에 록펠러센터에 있는 <라디오시티 뮤직홀>을 다녀가시오. 기네스북에도 올라있는 세계최대의 상설극장이지 않아요.』
『거긴 표를 살 수 있을까요?』
『살 수 있을 거예요. 전에는 거기서도 파리의 무랑루즈쇼를 능가하는 화려한 쇼를 공연했었고, 그 때는 지금의 <오- 칼캇타>가 무색할 만큼 표사기가 어려웠지만 요즈음은 운영난 때문에 폐관직전에 몰려서 내용도 많이 쇠락했고 관객도 그전처럼 많이 몰리지 않아요. 그저 여행자나 촌뜨기들이 옛날의 명물을 한번 본다는 기분으로 가는 정도여서 표가 매진되는 일도 잘 없어요. 그래도 아직은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서 한번쯤은 보아 둘만 하지요.』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는 마침 그레고리 펙이 주연하는 전기 영화 <맥아더>가 상영되고 있었고 과연 객석은 1층도 다 채워져 있지 않았다.
다행히 주제나 내용이 낯익은 것이어서 부담 없이 감상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서 그랬던지 깜박깜박 졸았는데 결국 이 졸음을 확 가시게 해준 것은 영화가 끝나고 이어서 벌어진 현란한 쇼프로였다.
6천2백여 개의 객석에 걸맞게 넓은 무대 위에 수십 명의 미끈미끈한 댄서들이 출연하여 회전무대와 3개의 승강무대를 타고 호화찬란한 조명을 받아가며 황홀한 춤과 노래를 선사한 것이다.
우리들의 눈에는 익숙하지 않은 이러한 옴니버스 프로그램은 우리네 3류 영화관의 2본 동시상영이나 막간 코미디 공연 같은 관객유치 수단과는 다른 이곳 특유의 전통적인 예술 감각의 프로그램으로서 연간 관객동원수가 8백만을 상회하는 기록을 보유하게 한 장본인이요 명실 공히 세계 최대 상설공연장이 되게 한 주역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런 훌륭한 프로를 관람하면서도 아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은 연예계의 사조랄까 어떤 흐름이 점차 변해가고 있고 그것은 관객들이 어딘가 좀 더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것에서 미를 추구하거나 예술을 만끽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마치 <오- 칼캇타>의 만원사례가 말해 주는 것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