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에 본 美國](10)
평등의 나라
나와 함께 거실에서 한담을 나누고 있던 닥터 K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저녁뉴스에 귀를 잠깐 기울이더니 『오늘로써 33번째 주가 남녀평등권 법안을 주 의회에서 통과 시켰군』 한다.
『남녀평등권법? 33번째 주? 그럼 아직도 미국은 남녀평등의 나라가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깜짝 놀란듯이 물었다.
『그런 건 아니지, 다만 법적으로 보장되는 평등권을 인정하기로 한 주가 이미 33개 주나 되고, 이로 미루어서 멀지 않아 나머지 17개 주도 모두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거지.』
『그래? 그럼 멀지 않아 모든 미국여성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평등한 취업조건이나 기타 사회적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단 말이군.
그리고 또 모든 미국 남성들도 법적으로 보장된 「설거지」와 「기저귀 갈아주기」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하하하』 우리는 웃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서 문득 다른 측면을 상기하게 되었으니, 무릇 흑백평등을 강조하고 남녀동권을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뒤집어서 보면 그것들이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의 반증일 터인 즉,
평등이란 말을 마치 미국의 대명사처럼 인식하고 있던 사람에게는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점이다.
듣건데 「평등의 나라」 미국에서는 모든 인간은 그가 백인이건 유색인종이건, 부자건, 빈자이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또한 강한자건 약한 자건 간에 모두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서
어느 경우에나 차별받지 아니한다 하고 또 이렇게 법적인 장치까지도 마련되어 가고 있다 한다.
그러나 그 나라의 대통령이 백인 학교로 하여금 흑인의 입학을 받아들이도록 명령하거나 버스 좌석에서 흑백칸을 철폐하도록 조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백인 주택 구역에는 흑인이 입주할 수 없으며, 또 국민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차례로 장래의 희망을 개진할 때 한 유색인종의 아이가 「나는 장차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 고하자
주위의 백인 학생들이 모두들 박장대소 하면서 「너는 유색인종이 아니냐」 고 어이없어 하는 등, 내재된 불평등의 감정은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또한 경제력 없는 노약자의 교통수단이 버스일 수밖에 없고 가난한 샐러리맨의 그것이 지하철일 수밖에 없을 때,
멀세데스 벤츠나 링컨 컨티넨탈의 탑승자는 주유소 용원이나 관청 현관의 수위, 심지어는 교통 정리하는 순경에게서도 정중한 경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법원이 피고의 유죄여부를 평결할 배심원을 평등공정하게 선정한다고 전화번호부를 뒤적이고 있는 동안에, 연방의회에서는 국제협정도 아랑곳없이 면책특권의 다른 나라 대사까지 자기네들의 증인석에 끌어내고자 압력과 위협을 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남녀평등이 아니라 한술 더 떠서 여성상위를 운위하고 있는 동안에, 많은 음지의 여성들이 그들의 남편으로부터 정신적으로 그리고 또 흔히는 육체적으로까지 학대받고 있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레이디 퍼스트」가 미국사회의 에티켓 제1조로 엄연히 살아 있는 한은 항상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레이디」의 권리는 오늘도 내일도 법으로만 주장되고 보장되어질 요원한 신기루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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