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인지라
“논객”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습니다.
나를 두고 가끔 “논객의 수장”이라고 하는 것은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으니 일종의 존칭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 “보수”라는 낱말을 붙여, “보수논객의 수장”으로
부르는 것은 질색입니다. 내가 왜 “보수”입니까.
의회정치의 기반이 확고한 나라에는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습니다.
있어서 마땅하다고 믿습니다. 영국에는 보수당이 있고 노동당이 있습니다. 마가렛 대쳐나 토니 블레아는 영국정계의 거물들이었고,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전후, 서독 정계를 주름잡은 콘라드 아데나워와 통독의
밑거름을 마련한 빌리 브란트는 독일 역사에는 없어선 안 될
정객들이었는데, 아데나워는 보수적인 기독교 민주당 창당 멤버이었고,
브란트는 진보적인 사회민주당 당수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일이 이 두 정치지도자들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아데나워가 누구이고 빌리 브란트가
누구입니까. 북의 인민공화국의 김정일을 흠모·추종하는 자들은 진보·
개혁이고,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사수하리라 결심한 사람들은
보수·반동입니까. 오늘의 남한 땅에 좌익이 있습니까. 누가 좌익입니까.
반미·친북으로 국민을 선동하여 종당 적화통일을 획책하는 그 자들이
어찌하여 진보세력이 됩니까. 조국 역사 5천 년에 가장 반동적인 자들을
좌익이라며 높이고, 자유민주주의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는 나 같은 사람을 보수·반동으로 몹니까. 제발 이러지들 마세요.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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