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의 사자산 법흥사(獅子山 法興寺)로 가는 길목에는
지금의 법흥사 자리에 흥령선원(興寧禪院)을 개원한 징효대사(澄曉大師)가
자주 포교하던 곳에 세운 “요선정(邀僊亭=邀仙亭)”(‘신선을 맞이하는 정자’라는 뜻)이 있다.
정자의 안쪽 벽에는 이곳 영월 주천(酒泉)의 경개를 노래한
“숙종대왕의 어제시(御製詩)”를 판각한 현판과
금석(今昔)의 시인묵객들이 이를 보고 다투어 지은 ‘어제시 운차(韻次) 시’들을
지어 걸어놓아 풍류를 돋웠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武陵里 磨崖如來坐像)]
요선정 바로 앞에 있는 이 마애불좌상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얼굴 부분은 양각으로 조각하였고 그 밖의 부분은 모두 음각으로 선각했다.
신체의 각 부분 비율이 많이 어긋나는데다가 오랜 세월동안에 흐른 빗물이
바위 이끼 까지 멋대로 벗겨내서 얼핏 보면 입상(立像)처럼 보인다.
[법흥사 적멸보궁(法興寺 寂滅寶宮)]
신라 선덕여왕 때(AD 643)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수도 중에 친견한 문수보살로부터
전수 받은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 등을 가지고 와서
이곳 사자산 기슭에 봉안하고 개창한 법당으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다.
법당 안에 다른 불상을 모시지 않은 것은 당연한데,
뒷벽조차 틔어 놓아 바로 법당 뒤의 흙무덤과 사자산 기슭을 바라볼 수 있게 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 그림에서도 법당 뒤의 흙무덤이 관통해 보인다.
[보궁(寶宮)과 석분(石墳)과 부도(浮屠)]
적멸보궁의 뒤쪽에 작은 흙무덤이 있는데,
그 앞자락에는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그림의 중앙에 토굴의 입구가 보임)과
주인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사리탑(그림의 오른쪽)이 있다.
그 앞에 두른 석축은 근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