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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차례
하늬바람에 모과나뭇잎이 올라오는 걸 보니 이파리 하나 내는데도 순서가 있다 해 뜨는 쪽으로 하나 내보내면 해 지는 쪽으로도 하나를 내고 그 사이에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잎 하나를 꼭 세워둔다 좌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꼭 그렇게 잎을 낸다 밤나무도 동백나무도 오른쪽에서 잎이 나면 다음에는 왼쪽에서 잎이 돋는다 마주나는 건 마주나고 돌려나는 건 꼭 돌려난다 하찮은 들풀이나 산기슭 작은 꽃들도 꽃잎이 다섯 개인 건 꼭 다섯 개만 내고 여덟 개인 건 여덟 개만 낸다 냉이나 민들레나 우리가 보기엔 그저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들꽃도 저희끼린 다 정교한 질서를 따르고 생명의 사소한 일 하나를 끌어가는 데도 반드시 지킬 줄 아는 차례가 있다 이파리 하나에도 . . . 詩 /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