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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진재 팔십주년 추모제]

□ 관동대진재 팔십주년 한국인 희생자 위령의 종 보수 사업 개요


『개 요』

관동대진제 때 일본 땅에서 스러져간 한국인의 넋을 기리는‘추모제’가 뜻을 모은 민간 추모회의 주도로 열릴 예정이다. 순수 민간모임인 [관동대진재 80주년 한국인희생자 추모회(회장 申禹植)]는 한국 전통예술계를 비롯한 공연예술계와 영화계, 언론계 등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극단 신주꾸양산박의 대표인 김수진씨를 비롯하여, 그 간 한국과 교류가 있었던 일본의 연극인들이 선뜻 성금을 내는 데 앞장서고 있어서 흥미롭다.

올해는 관동대진제가 일어난 지 80년이 되는 해이므로 그 의미가 더욱 뚜렷하다.

□ 사업취지 및 모금 활동 내용

▶사업명
        관동대진재 80주년 한국인 희생자 위령의 종각 補修 및 整備  


▶사업취지
1923년 9월 1일에 일본 관동지방에 큰 지진이 나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엄청난 재산이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웠던 일은, 이 미증유의 재난을 틈타서 일단의 조선인들이 작당하여 우물에 독극물을 넣고, 무기를 가지고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이에 흥분한 일본인들이 손에 잡히는 칼이건 낫을 가지고 조선인들을 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지역에 살던 조선인 수는 2만 여 명이었고, 죽은 사람은 7천 여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표현대로, 그들은 조선인이라는 죄로, 「까닭을 모른 채」 죽어갔던 것입니다.
이 무참한 조선인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몇 몇 뜻 있는 이들이 조그만 성의를 모아, 치바현 야치요(千葉縣 八千代) 소재 觀音寺에 「普化鍾樓」를 세운 것은 1985년 9월의 일이었습니다. 종루를 짓는 데 필요한 나무, 기와, 흙, 모두를 우리나라에서 가져가 한 평 짜리 종각을 세우고, 단청을 곱게 입힌 후, 보신각의 종을 본 뜬 1m 남짓 높이의 종을 달았습니다. 매해 9월 초하루가 되면 이 종을 울려, 저 원혼들의 극락장생을 빌어 줍시사고, 우리들은 세키(關) 주지에게 부탁드렸습니다.
2003년인 올해는 관동대진재가 일어난 지 80년이 되는 해입니다.
최근 이 종루를 돌아보니, 조금은 헐고, 단청은 벗겨져 있었습니다. 80년 전의 과거는 다시금 우리들의 마음을 애절하게 하였습니다. 최초의 종루 건립에 참여하였던 우리들은 이번에 이 종루를 보수하면서, 「關東大震災 八十周年 慰靈祭」를 마음에 두게 되었습니다. 또 미루어왔던 종루 건립문을 판각하여 전말을 알리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주최
        관동대진재 80주년 한국인희생자 추모회(회장 申禹植)
        동 동경 추진위원회(대표 金宗永)
        
▶모금활동
       ·찬 조 액  :  한 구좌 일십만원 이상   기업·단체  일백만원 이상
       ·모금기간  :  2003년 6월 1일부터 8월 30일까지
       ·모 금 처  :  관동대진재 팔십주년 한국인희생자 추모회 (회장 신우식)
                   농    협   029-01-207243                 
                   국민은행   031601-04-018299
                   외환은행   141-18-40990-7  
      * 참여인들은 건립 현판에 판각됩니다.

□건립문(전문) 내용

1923년 9월, 관동대진재 때, 억울하게 죽은 우리 동포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여기 高津 觀音寺 경내에 普化鐘樓를 세우고 이「위령의 종」을 봉헌하는 바이다. 한국 13개 시·도의 흙을 모아, 한국의 기와와 목재로 한국식 단청으로 정성들여 만들어진 이 종루는 현해탄을 건너 이 자리에 선다. 그 때, 그 날의 끔찍하고 어두운 역사는 그 날의 비명들과 함께 묻혀버리고 원혼들은 그대로 버려져 왔으나, 뜻 있는 일본인 특히, 여기 관음사의 2대에 걸친 주지 스님은 위령의 塔婆를 모셨으며, 많은 시민 그룹이 스스로의 치부를 캐내는 작업을 벌임으로써 잃어버린 역사는 재조명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鮮人來襲' 流言의 虛構性도, 기록하기조차 싫은 狂氣의 진상도 반세기가 지나면서 세상에 드러나고야 말았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인은 그 어두운 역사를 미워하고 슬퍼할지언정 오늘의 일본, 오늘의 일본인을 꾸짖고 싶지 않다. 오히려 역사를 正視하며 역사 앞에 겸허한 일본의 友人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광복 40주년 한일국교정상화 20주년의 해에 이 조그마한 종을 바치면서 오늘날의 한국인은 무량한 감개를 안고 있다. 이 習志野 들판의 이 잔잔한 메아리가 모든 한국인·일본인의 가슴에 닿아, 서로 사랑하며 뜨겁게 손잡는 震源이 되기를 바라고 싶다. 이 종소리를 함께 들으며 63년 전의 슬픈 역사를 함께 생각하고 그 숱한 희생자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오늘의 한·일간의 상호 이해와 상호 존중을 함께 다짐하자.

1985년 9월 1일

관동대진재 한국인희생자 위령의 종 건립위원회

□위령의 종 보수사업 모금운동 참여자 명단(2003년)
贊助者名鑑
                
                                                   韓國人 贊助者=總 113人
申禹植 李世榮 康信敬 金義卿 沈英輔 洪慈善 沈雨晟 李椿淵 朴圭彩 孫基祥
서울남솔 로타리클럽 安山中央 로타리클럽 沈相泰 金旼成 朴正子 辛仙姬 柳在萬 李在煥 康祐碩 金忠漢 金有珍 南貞淑 朴在完 安聖基 李滄東 李忠稙 鄭東煥 崔有震 李景錫 金泰敬 金學柱 姜春愛 具滋興 具重會 鞠守鎬 金甲洙 金德男 金明柱 金汶起 金美惠 金聖源 金秀雄 金有感 金鍾南 金振  金昌實 金昌華 金春江 金炯權 김형직 金惠玉 문관식 朴大鎭 朴奉緖 朴商昊 朴龍斗 朴麟植 朴仁子 朴精紀 邊勝鳳 徐廷燦 孫成木 孫桭策 孫弼榮 宋建鎬 申允植 安平善 梁泰朝 呂茂永 吳麟錫 吳貞學 吳泰瑾 吳興植 王東雲 柳明圭 劉嬉聲 尹雄錫 李基興 李  明 李  盤 李相萬 李相順 李仙衡 李成宰 李裕璨 李仁浩 李鍾漢 李珍璟 李致雨 李泰柱 林愛子 丁明淑 鄭在郁 鄭泰卿 鄭泰時 鄭鎬淳 趙東華 趙日均 周成根 朱榮淑 車秉勳 蔡瑛蘭 崔吉圭 崔大奎 梁正雄 이한옥 송성애 송양순 신현경 獨立劇場 서울市劇團 東崇水曜會 金泉大學



                                        日本人 贊助者=總 44人
千葉東ロ-タリ-クラブ 多田 徹 劇團風の子 中里郁子 大野幸則 神田成子 木山 潔 水谷內助義 ふじた あさや 山田昭一 吉見守翁 風の子九州 內木文英 子ども核廢
石川逸子 石坂愼二 石澤秀二 瓜生正美 岡田和夫 岡本昌己 大笹吉雄 小田切ようこ 金守珍 金永彬 高福子 姜德相 坂部計美 末廣幸子 關矢幸雄 高田一郞 高澤まどか 玉木聰美 中根公夫 西堂行人 西村舞子 林 陽一 土方與平 松原 剛 矢野恭子
渡 一夫 風の子中四國 風の子北海道 劇團   スピリット エイド(山道志穗子)


<主要 參席人士 (無順)>
梁泰朝 吳興植 鄭泰卿 金文煥 姜德相 裵 昭 馬政子
多田 徹 瓜生正美 中里郁子 神田成子 木山 潔 水谷內助義 小田切ようこ 小野利恭 高澤まどか 高山正孝 吉見守翁 飯田 勇 石川逸子 矢野恭子 羽月雅人 染谷 毅
小山 篤 高  ルミ 松尾洋一郞 黑田おさむ 曾我 浩 初山武美 佐藤文夫 田 素子 外


<言論機關>
郭棟國 金東燮(以上 韓國文化放送) 吳木大泳(中央日報) 崔 洽(朝鮮日報) 朴炳涉(半月城)


<風の子>
山道志穗子 岩永香月 高垣信子 長谷部たまき 大越 文 龍 美和 中島 紀

<公演團>
梵唄(無形文化財 第50 ) 九海 古山 月陀 雲峰 曉性 法顯 性法 恩眞 セナ クツ(無形文化財 第104 ) 金有感 李相順 許龍業 李善浩 金春江 元玉喜 李成宰 李仁淑 朴仁淑 姜玉任 金在龍 蔡瑛蘭 李順禮 朴珠姬 金嬉淑 李福男 金敬殷 姜蓮姬 鎭魂舞(無形文化財 第27 ) 李愛珠

<丹靑·補修·準備委員>
沈雨晟(總指揮) 金富吉·金美玲(丹靑) 柳承昊(補修) 朴圭彩(涉外) 崔有震(進行)
柳閔熙(記錄) 金宗永(行事主管) 金義卿(主務)



□ 관동대진재 팔십주년 추모제 행사 내용

    '우리의 공연예술로 승화하는『팔십주년 추모제』'

흔히 우리는 일본의 과거의 죄악에 대해「용서하되 잊지 말자」고 말합니다. 최근세사에 유례를 볼 수 없었던 이 참살극에 대해 일본정부는 여전히 공식확인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일본정부가 영원히 사죄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저들은 우리 조국을 짓밟고 우리 민족을 착취했으며, 결코 과거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다.」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우리는 약했기에 당한 100년 전을 상기해야 하며, 이제 우리는 더 커져야 한다」고 우리는 다짐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의 100년 과거사에 대한 뜨거운 관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류애를 가지고 호소합니다. 이 가엾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종을 울리고 향을 사르는 일은 우리들 현대인의 몫입니다.

상대의 잘못에 대해 더 이상 연연하지 말고, 종을 울리고 향을 사르며, 조용히 저들 영혼의 천도(遷度)를 祈求합니다.
        

추모제 일정

*일시 2003년 8월 31일 (일) 12:00-15:00
*장소 일본국 치바현 야치요시 高津 觀音寺 경내
*행사내용
        1) 보화종루 건립문 현판 부착
                관동대진재 한국인희생자 추모회
                글   申禹植(회장, 대한언론인회 명예회장)
                글씨 洪石蒼(한국화가, 홍대 교수)
                서각 鄭震雄(書刻家)

        2) 종루 보수와 주변 정비

        3) 종을 울리며 향을 사름(내방객 참여)
        
        
      4) 추모 공연
          
           * [범패」(한국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봉헌
             九海, 古山, 曉性, 雲峰, 月陀, 性法, 恩眞, 法顯
             (영산재보존회 여덟 분 스님)
  
               *「살풀이」이애주 교수 독무
  
               * 희곡『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의 한 장면
            (일본연극인들의 낭독형식 공연-극단 가제노코 단원 3인 낭독).
  
              *「새남굿」(한국중요무형문화재 제104호) 특별공연
            金有感          (인간문화재), 김정치, 허용업, 이선호, 김춘강,
            원옥희, 이성재, 채영란, 이인숙, 강옥임, 김순이, 전경혜
            (서울새남굿보존회 열 두 분 회원)

□ 관동대진재 팔십주년 추모제 준비위원회



▶관동대진재<위령의 종> 건립
                                1985년 5월
신우식, 姜德相, 高福子, 구자흥, 김갑수, 김강섭, 김덕남, 김동원, 김상렬, 金兩基, 김의경, 김정옥, 김창화, 김충한, 패티김, 앙드레김, 길옥윤, 문일지, 박규채, 裵昭, 백승길, 설도윤, 손기상, 신봉승, 신선희, 신용하, 신호인, 심상태, 심우성, 안평선, 양금석, 吳充功,  爲佛스님, 유재만, 윤극영, 윤상철, 윤혁기, 이두엽, 이백천, 이상만, 이광표, 이명, 이성수, 이세영, 이원경, 이재환, 이종덕, 이종찬, 이춘연, 이해랑, 정수웅, 정순일, 정인섭, 조경희, 조문형, 조병철, 차범석, 최길규, 최대규, 최서면, 최유진, 최일남, 표재순, 한준석, 홍순길 외
▶위령의 종 모금행사 협찬
  김수철, 김수희, 송창식, 이상용, 이선희, 이은하, 주현미,
  김강섭 팝스 오케스트라 단원 일동
▶高津觀音寺 住職
  關 光禪
▶日本側人士
  石澤秀二,瓜生正美,大笹吉雄,神田成子, 木山 潔, 多田 徹, 中里郁子,
   山 繁, 水谷內助義 外
▶건립실무위원
  沈雨晟(총지휘), 宋基福(설계), 李珷永(목공), 金富吉(단청), 黃在天(개와),
▶竣工式 당일 舞踊출연
  丁明淑, 梁貞花, 朴貞子
▶종루 명명 및 현판 글씨
  宋志英

<팔십주년 추모제 준비위원회>
김의경 (극작가, 공연문화산업연구소 이사장)/ 박규채 (배우, 김천대 초빙교수)/ 손기상 (언론인, 전 삼성문화재단 고문)/ 신선희 (무대미술가, 서울예술단 이사장)/ 심우성 (민속학자, 공주민속극박물관장)/ 안평선 (방송·연극인, 한국방송인회 상임부회장)/ 이백천(음악평론가, 남이섬노래박물관 건립추진위원장)/이상만 (음악평론가, 다움연구회 이사장)/ 이세영 (칼라홈쇼핑 대표이사)/ 이춘연 (영화제작가, 영화인회의 이사장)/ 이태주 (연극평론가, 서울시극단 예술감독)/ 정수웅 (다큐 감독, DacuSoul 대표)/ 최유진 (독립극장 대표, 공주영상정보대학 교수)/표재순 (연출가, 연세대 영상대학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