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버지의 수염과 아들

by 이용분 posted Jul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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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수염과  아들                              청 초 이용분
 
  • 남편의 수염은 아무리 깨끗이 깎아도 한 이틀만 지나면 봄날의 보리순 처럼 어느
    새 또 송송 자라나곤 한다. 그는 평생 수염을 길게 기른적이 없다. 젊던 시절에는
    흰 피부에 수염을 깎은 구레나룻 자리가 유난히 새파랗게 돋보여 젊음을 과시 했었다.

    예비군 훈련을 가서 몇박 며칠을 지난 후 웃자란 수염에 추레한 모습을 하고 집에
    돌아 왔을 때 보니 가지런한 멋진 수염이 아니었다. 그 수염은 마치 가는 철사
    부러쉬 처럼 뻣뻣하기도 하여 가닥가닥이 제 마음대로 뻗쳐서 조금만 더 길게
    기르면 마치 만화 속에 나오는 산적의 수염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웬일인지 아침부터 남편이 수염을 깨끗이 깎았다고 나 보고 쳐다 보라고 한다.
    오늘은 큰 아들이 다니러 오기로 한 날이다. 그 아이는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면 어린 아이처럼 얼싸 안은 채 아버지의 이마 두 뺨과 볼에 마구 뽀뽀를
    하고 비벼댄다.

    보기에는 다 큰 아이가 어찌 저러누?  가히 연구대상감이다.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사자들을 보면 그들끼리 그런식으로 비벼대며 같은 혈통
    임을 과시하는 걸 본다.그럴 때 보면 아빠사자와 새끼사자를 보는 것처럼
    연상이 되곤 한다.

    "오늘은 찬진이가 오는 날이잖아 그 애의 뺨이 아플까 봐 수염을 말짱히 깎았지"
    한다.
    아이들을 키울 때에 그는 과묵하고 엄한 아버지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랜만에
    다니러 온 아이가 뺨에 뽀뽀라도 하려 하면 얼굴을 찡그리고 이리저리 피하며
    칠색 팔색을 했었다. 아이들이 커서 소리 소문 없이 모두 빠져나간 후 우리 두
    부부만 사는 날들의 연속이다. 그 애들을 오래 못 보면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쓸쓸한 건 부정 할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는 싫어하는 척 하면서도 아이들의 이런 관심이 흐뭇했나 보다.

    기다리던 아들이 왔다. 그들이 서로 붙들고 공항에서 만난 사람들 모양 이번에도
    그런식으로 반겼는지는 잘 보지 못 했다.그 애는 오자마자 내 서제로 들어가더니
    준비 해 가지고 온 자동차 세정제를 헌겁에 뿌려서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 판
    마우스를 차례차례 정성스레 닦아 낸다.지난번에 와서는 내 보드 판이 지저분 해
    졌다면서 바꿔야 쓰겠다고 하기에 극구 사양을 했었다.

    년 전 내가 문자판(文字板)에 우유를 쏟는 바람에 못 쓰게 되어 바꾼지가 얼마
    안 된 새 것이기 때문이다. 눈이 안 좋은 나는 먼지가 꼈는지 어쩐지 신경을 쓰지
    않아서 잘 몰랐었다. 손때가 꼈다손 치더라도 그건 나만의 것이니 괜찮지 뭐
    어떤가 해서다. 아무튼 그 아이의 그런 보살핌이 마음속으로 고맙고 따뜻하다.

    올 때 마다 우리 집 과일이 떨어지지 않았나 신경을 써서 제일 맛있는 걸 고르고  
  • 그 외에 내가 좋아하는 걸 이것저것 함께 사오곤 한다. 그 애는 우리에게 들이는
  • 정성이 한결 같다. 매번 우리를 제 차에 태우고 먼 곳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 점심을 사주고 꼭 드라이브를 시켜준다.
  •  
  • 예전에 아이들을 키울 때 듣던 음악 '베토벤의 운명' '전원 교향곡' '시크릿 가든'
  • '폴모리악단 연주'등을 함께 차 안에서 들으면서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 아이를 키운 보람을 맛보곤 한다.아이는 제 차에 'JBL 스피커'를 장착 해 놓아 음향도
  • 최 상급이다.
  •  
  •  남편은 음악을 아주 좋아 해서 집에 세계적인 음악 기기인 '메킨 토시' 를 장치 해 놓고  
  • 틈만 나면 이른 새벽부터 아이들에게 음악을 크게 틀어 잠을 깨우고 들려준 결과 세 아이들
  • 모두가  착한 심성에 성인이 되어서도 똑 같이 음악을 좋아 하게 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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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은 시간이 빠듯한 중에 오는 터라 갈 길이 바쁜 그 아이는 아빠를 보듬어 안고
    길고도 소나기 같은 석별의 정을 남긴 채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각오를 했는지 이번에는 의연하게 받아 준다.
    매번 "징그럽다 얘야,"  거절하면서 곤욕을 치르는구나 어쩌지...!
    혹여 마음이 여린 아들아이가 상처를 입을까 봐 아슬아슬하던 나의 생각도
  • 편안하게 바뀌었다.

    아버지는 아들아이가 다녀가면 눈에 띄게 힘이 솟는 것 같다.
    한해한해 나이가 년로 해 지는 그가 이번에도 크나 큰 위로를 받아서 다음 번
    아들 아이를 만날 때까지 무던하게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었겠구나...
    마음속으로 큰 희열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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