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가난했지만 마음이 따뜻했던 시절...                 청초    이용분

  • 어제는 모처럼 날씨도 따뜻한 오후였다. 둬달 만에 골다공 치료 칼슘약을 타러
    ‘21세기 병원'에 갔다. 가는 버스가 자주 오지를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 작은 규모는 아닌데 천정이 나지막하고 조용한 종합병원이다.

    요즘은 지었다하면 종합병원들은 천정이 높직하고 찬바람이 돌 정도로 깨끗하다.
    별 필요도 없이 넓고 으리으리해서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 치료분야를 찾아
    가기도 힘이 든다.공연히 의사를 만나기 전 부터 지치고 주눅이 들기 십상인데 이
    병원은 그렇지가 않다. 마침 기다리는 환자수가 적어 바로 내 차례가 되었다.

        내 담당 의사는 사십대 후반 머리숱이 너무 많아 마치 잎이 무성한 상 나무가
    바람에 쏠리는 듯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 얼굴보다 무성한 머리카락이 먼저
    눈에 띠어 순간 어떤 만화의 주인공처럼 조금 우스운 인상으로 내게 보인다.
    내 챠트를 보면 골다공 칼슘 약을 타러 온 걸 알텐데
    “ 어디 다른 곳이 아픈 데는 없으십니까?^^” 하고 묻는다.    

    보통 요즘 의사들은 자기 전공분야 말고는 아주 말을 아껴서 여간해서는 환자가
    다른 환부 얘기는 응급상항 말고는 묻지 않게 훈련이 되어 있다.기대도 안했는데
    이렇게 의사가 자상하게 묻다니 고마운 일이다. 그 의사의 한마디 말에 내 마음이
    따뜻하다.  

    약 처방전을 들고 계산대에 갔다. 나보다 조금 늦게 온 어떤 여자환자가 앉을
    자리가 없어 계산대에 기댄 채 내내 서서 기다리고 있다. 몇 발자국 만 가면 빈
    의자가 수두룩하지만 꼼작 하기가 싫은 모양이다. 우리가 앉은 것이 기다란
    의자이니 조금씩 좁혀 앉으면 될 터인데 아무도 비켜 주지 않고 그도
    ‘좀 좁혀 같이 앉읍시다’ 하고 청하지도 않는다.  

    금세 되겠거니 기다리던 일이 사무직원이 무얼 그리 꼼지락거리는지 도통 차례가
    오지를 않는다.
    “우리 조금씩 다가앉아 저 분이 함께 좀 앉도록 합시다”
    보다 못한 내가 솔선 자리를 당겨 앉았다. 옆 사람도 덩달아 비켜주니 금세 그
    여인이 앉을 자리가 생겨 모두가 편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이름을 불러 나는 약 처방전을 타가지고 그 자리를 뜨게 되었다.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고마워하던 그 여인과 모두의 얼굴에 나타난 흐뭇했던
    표정들이 지워지지 않는다.오늘은 그 의사의 친절한 말 한마디와 그 환자를
    자리에 끼어 앉게 한 일로 공연히 내 마음이 즐겁다.

    요즘은 모두 개인주의가 팽배하여 남을 염려 해 줄지도 배려를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으면 그 마음 속에 모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기차를 타게 되면 둘이 앉으면 넉넉하고 셋이
    앉으면 꼭 끼어서 조금 불편하지만  앉은 사람은 선 사람을 배려하여 의례히
    앉기를 권하고 선 사람은 앉은 사람에게 양해를 얻어 함께 끼어 앉아 가면 긴
    여행길이 아주 푸근하였다.
      
    하다못해 사탕 한 알에서 삶은 계란을 나누어 먹으면서 정을 나누니 완행열차를
    타고 가면서도 긴 시간 여행이 모두가 지루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X은 옆에 두고 먹어도 사람은 옆에 두고 못 먹는다' 는 말도 있듯이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  

    어느 날 부턴가 사람을 바로 옆에 두고도 전연 갈등을 느끼지 않고 먹게 되었다.
    나누어 주며 먹으라는 것은 구차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매너로 비치게 되었다.  
    세월도 그리 변했지만 세대도 모두 바뀌었다. K.T.X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시간 남짓이면 완주를 한다. 입은 겉옷이 우둔하여 벗어 걸자 바로
    다시 집어 입어야 될 만큼 빛의 속도로 모든 게 빠르게 변했다.

    옆 사람을 신경 쓸 만치 한가롭지도 않고 자기가 할 일을 생각하기도 벅찬 세상
    으로 변해 버렸다. 모든 게 경제 우선이고 능률 우선이다.
    모든 일은 컴퓨터와 기계가 대신 하여 사람들이 할일을 대신하며 지배하게 되었다.
    느리고 마음이 좋은 사람은 발붙일 데가 없어지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 십상인 세상이다.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엇이 서로의 진정한 행복인지 본말이 뒤바뀐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경제적으로 좀 잘 살게 되었다고 서로 목을 꼿꼿이 고추 세우는 사이 이 아름다운
    인정의 샘은 어느 새 잦아들고 매말라 갔다.  
    못 사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난하고 좀 못살던 시절에 따뜻하고 서로를
    배려하던 그 시절이 향수처럼 그리워지는 건 나만의 사치스런 생각인걸까...  
          
                                                              2013.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691 매일 생기는 '암세포 죽이는' 신비한 음식 이용분 2020.10.08 94
6690 세익스피어가 주는 중년의 9가지 교훈 이용분 2020.10.07 21
6689 인생의 뒤안 길에서... 이용분 2020.10.03 40
6688 아이들과 함께 송편 빚던 즐거운 한가위 ... 이용분 2020.09.28 21
6687 천상병시인의 찻집 '歸天'에서 이용분 2020.09.27 52
6686 가저 보지 못 한것에 대한 갈망 이용분 2020.09.20 65
6685 Andrea Bocelli, Sarah Brightman--Time toSay Goodbye (HD) 이용분 2020.09.18 1166
6684 *** 인생 3사 3걸 3기 *** 이용분 2020.09.12 18
6683 베토벤의 '교향곡6번 전원' 이야기 이용분 2020.09.05 74
6682 세월이 가면 잊혀지는 世上 人心 이용분 2020.08.30 26
6681 ♡ 수녀님의 카톡 ♡ 이용분 2020.08.25 26
» 가난했지만 마음이 따뜻했던 시절... 이용분 2020.08.20 21
6679 [南齋晩筆](36-N)[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진본] 보기 南齋 2020.08.17 32
6678 이순신 장군을 사형에서 구한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같은 정승이 요즘에는 없는가? 이용분 2020.08.10 108
6677 두 며느리 이야기... 이용분 2020.08.02 23
6676 우리들의 4회 선배님들의 건강하신 모습들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건강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이용분 2020.07.31 16
6675 장마비 내린뒤... 이용분 2020.07.29 35
6674 ◆ 이순신 장군의 11가지 생활신조 ◆ 이용분 2020.07.26 40
6673 사람의 향기 이용분 2020.07.24 31
6672 재미 7회 남자 동기 모임(2017년 소식) 이용분 2020.07.23 21
Board Pagination Prev 1 ...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 354 Next
/ 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