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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3 11:13

첫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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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눈                                청초    이용분

      오늘은 올 겨울 들어 첫눈이 펄펄 내렸다.
      어두컴컴한채 잔뜩 찌프린 하늘에 날씨가 푹하다 보니 내리는대로 바로
      녹아 버려서 땅만 조금 질척할뿐 눈은 금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눈을 맞으며 걷노라니 문득 그 옛날 중학교 일학년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노천명의
      "어머니가 떠나시던 날은 눈 보라가 날렸다." 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이왕이면 첫눈 내리는 날 만나기로 한 옛 애인이나 친구 생각이 나던가
      할 일이지 왜 그 슬픈 싯 구절이 생각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작별                          노천명              

      어머니가 떠나시던 날 눈보라가 날렸다.
      언니는 흰 족두리를 쓰고
      오라버니는 굴관을 차고
      나는 흰 댕기 느린 삼 또아리를 쓰고

      상여가 동리를 보고 하직하는
      마지막 절하는 걸 봐도
      나는 도무지 어머니가
      아주 가시는 거 같지 않았다.

      그 자그마한 키를 하고―
      산엘 갔다 해가 지기 전
      돌아오실 것만 같았다.
      다음 날도 다음날도 나는
      어머니가 들어오실 것만 같았다

      시집<창변> (1945. 2. 25)
      [출처] 여류 시인 노천명(盧天命)시의 세계와 일대기 /작성자 아름다움


      아주 쌀쌀맞게 추운 날씨에 내리는 눈은 내리는 소리도 사락 사락 소리가
      나고 언 땅위에서는 잘못하면 미끄러지기가 십상이다.

      이런 눈으로는 눈사람을 만들기는 어렵다. 서로 대굴대굴 엉기지 않으니
      눈이 서로 붙지를 않아 첫눈에 잔뜩 설레이던 어린 마음을 달구기만 하게 한다.
    •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눈이 오면 의례히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곤 하던
      추억이 떠 오른다. 크게 굴려서 몸통을 만들고 좀 작게 굴려서 머리를
      만들어 얹고 검정 숯을 구해서 눈과 눈썹 삐죽하게 뭉뚝한 나무토막으로
      코도 만들고...
    • 세숫대야를 뒤집어 씌워서 모자로 하고 긴 마당 빗자루를 곁에 꽂아 놓으면
      한겨울 풍취가 물씬 나곤 했었다. 이제 눈사람 만들 아이도 다 커버리고
      눈사람을 만들 마당도 정신적인 여유도 없는 바쁜 세태에 살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눈사람보다는 컴퓨터게임에 더 빠져 있다. 동네 골목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 하던 동네 바둑이도 이제는 모두 방에 들어 앉아
      버려서 보기가 힘들게 됐다.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워 차들이 엉금엉금
      길 생각에 눈을 기다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만 같다.

      특히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눈만 조금 내리면 비닐하우스가
      눈의 무게 때문에 무너져 내릴까봐 가슴이 철렁철렁 할 일이다.

      허나 정초에 내리는 눈은 서설이라 하여 매우 반기고 매섭게 추운 겨울날
      여린 보리싹을 이불처럼 덮어 주어서 냉해를 막아주니 꼭 필요 하기도 하다.
      겨울에 눈이 안 오는 해에는 겨울 가뭄이라하여 보리싹도 말라죽고 그
      이듬 해에 가뭄을 예고하니 적당한 눈은 꼭 내려야 된다.

      오밀조밀 가즈런히 크고 작은 장독대 위에 내린 흰눈을 보는것만은 못 하지만
      그래도 초대형 아파트 창문을 통해서 춤을 추듯 선회를 하며 끝도 모를
      먼 하늘에서 펄펄 내려오는 눈송이들을 감상하는 것은 너무나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신비하기 조차하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테마곡과 더불어 자작나무 숲이 욱어진
      시베리아 흰 雪原을 끝없이 달리던 "오마샤리프"의 마차가 우리들 마음속에는
      아직 한 가닥 젊은날의 낭만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06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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