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내린후라 밭두렁 흙은 말랑말랑 물을 머금고 쫙 금이 간 채 조금만 힘이 가해지면 곧 무너져 내릴것만 같다.지난 해에 심어 놓고 지질그레한 것이라 거두어 가지않은 못난 배추 뿌리에 새순이 돋아나 배추도 그냥 월동이 되는 야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것이 비록 하찮은 것일지라도 이제 따뜻한 봄날 햇볕을 받아 잘 크게 되면 노란 배추꽃을 피워 나비들의 사랑을 받으며 씨앗을 잉태하여 좋은 씨받이 구실을 할수있으리라.
한동안 산을 오르지 않았더니 다리를 옮기기가 아주 무겁고 뻣뻣하다. 경사가 완만한 길로 가느라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는 곳으로 가니 발이 쑥쑥 빠져서 밟고 산등성이를 오르려는데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
나무들은 크면서 그 속에 껍질을 새로 만들어 내면 묵은 껍질이 터지면서 굵어지는 모양인지 묵은 껍질이 더깨로 남아 겹겹이 아주 두꺼운 가죽조각 처럼 더덕더덕 무겁게 붙어 있다.
어떤 나무는 같은 자리에 서로 같이 포개어 서 있으면서도 껍질이 밴질 밴질 한게 소나무와는 종류가 아주 다름을 알수 있다. 한 나무는 마치 옛날 가마솥 누릉지가 먹을수 없을만큼 몹씨 탔을때 그냥 물에 푹 담궈서 불려 놓은 누릉지 모양 두껍게 겹겹이로 나무에 붙어서 그도 아직은 그 나무의 일부분인듯 떨어저 나갈세라 찰싹 붙어 있다.
소나무들이 쓰러저 썩어 가고 있다. 여름에 자란 말랑한 부분부터 썩어서 비어 있고 겨울에 자란 나이 태의 단단한 부분만은 미처 안 썩고 마치 뼈처럼 앙상하게 들어나 있다.
어떤 아카시아 나무는 어느해 여름 폭풍우가 몹씨 불었던 때 골짜기로 쓸어져 뿌리를 하늘로 쳐들고 큰 짐승처럼 박혀 있었다. 이제 보니 껍질도 모두 썩어서 벗겨지고 뿌리는 이미 삭아 없어저서 점점 썩어가고 있다. 이제 나무들을 아무도 땔감으로 쓰지 않고 누구도 다른 용도로도 갖어가지 않으니 이리라도 느릿느릿 썩어서 흙으로 돌아 가는수 밖에 없다.
산불이 났을 때 이런 것들이 불이 붙으면 불씨로 남아서 큰 화재로 번지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누구라도 제발 거두어 가서 땔감으로 써 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한참을 안 신던 목이 짧은 양말을 오랫만에 신고 올랐더니 자꾸만 신발속으로 양말이 말려 들어가서 신발 탓인가 해서 오른쪽 왼쪽을 바꾸어 신어도 마찬가지라 성가시다.
바닥은 말짱한데 양말 목의 고무줄이 낡아 늘어저서 그런가보다. 그냥 두어도 모든 물건들은 서서히 낡아서 못 쓰게된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로 가는 세월 따라 늙어가는게 아닌가 ....?
이상한 것은 오늘은 그 흔하던 청솔모도 산새도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산 나뭇가지 위에서 다람쥐들이 뛰어 놀고 예쁜 새들이 우지 졌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한 산이었을까 ? 생각하니 아쉽기만 하다. 맑은 시냇물에 고기가 한마리도 노니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다.
이 산에 몇 그루 안되는 밤나무나 도토리나무의 열매들을 이들이 먹고 살수 있도록 가을에 사람들이 몽땅 털어 가지 말았어야 되었을 것을 ..... 사람들이 이를 배려하지 않은 결과가 이렇게 된게 아닌가 하고 야속한 생각도 든다.
처음에 오를 때는 발이 천근 같이 무겁더니 계속 오르다 보니 점점 발 놀림이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마침 3.1절 기념일 휴일이라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르 내리는 것을 보고 평소에 무심했던 등산을 건강을 위해서라도 계속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려 오는 길은 좀 쉬워서 한참을 정신없이 내려오다 보니 어디선가 가냘픈 산새 소리가 "배배배" 들려 오지 않는가! 얼마나 반갑던지 .... 아무리 고개를 쳐들고 올려 보아도 새는 눈에 띄지 않고 여기 저기 까치 집은 더러 보인다.
까치가 잡식성이라는데 산새의 알들을 모두 꺼내 먹어버려 산새들이 번식을 못하지 않았을까 염려도 되었다. 요근래에는 그 흔하던 청설모 조차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어차피 적자생존 모든게 자연의 섭리이니 할수없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제 양지바른 곳엔 봄을 맞아 서서히 어름이 녹은 땅속에서 스물스물 솟아 나는 맑은 샘물 가에는 기다란 잡풀 돗나물 물이끼등이 제법 파랗게 돋아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