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생각나는 어떤 친구 청초 이용분
봄이 되면 간절하게 생각이 나는 한 친구가 있다. 요 근래에 이 친구는 건강이 썩 안 좋아 거의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여 은둔을 하며 지내고 있어서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친구는 삼십 여 년 전 내가 정원이 있는 집에 살적에 십여 년 간을 앞뒷집에 살았다. 봄이면 마당의 잔디밭에 잡풀을 서로 뽑아 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요즘처럼 쌀쌀한 날이면 연탄을 때서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에 발을 넣고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서로 그 전에 살아온 이야기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에서 문학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서로의 심금을 털어 놓고 삼매에 빠져 들곤 하였다.지금까지 읽어 온 문학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작가가 될 재목이이라 면서 추켜 세우곤 했는 데 결국에는 내가 글을 쓰게 되었다. 그는 남의 아이들 가르치려다 자신의 아이의 육아를 그르치겠다며 초등학교 교사직을 미련 없이 던져 버린 열성 엄마이기고 하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 녀는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고향인 경상도 향리에서 얽히고 설킨 옛 친구들이 자주 찾아오고는 했는데 사연은 거의 모두가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다. 그 시절만 해도 60년대 말 이미 세상이 많이 변하여 가치관이 너무나 달라지고 인심도 변했는데 돈을 빌리러 다니고 빌려 주다니...
그런데 그들이 전에도 돈을 빌려갔었는데 그걸 갚지도 않았는데 또 빌리러 왔다고 한다. 얼마나 다급하면 체면 불고하고 그리할까 싶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같은 동네모임 친구가 그 당시 돈 20만원인가를 빌려갔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200만 원쯤 될 돈의 가치다. 그 돈을 영 갚지를 못하니 이 친구 집에 와서 얼마동안 가사 일을 도와주고 일당으로 갚는 형식으로 때우기로 정했다. 동네 친구들이 티타임으로 모이면 돈을 빌려간 그 친구가 부엌에서 커피를 타고 과일을 깎고 준비해야 되는 경우 일 텐데 오히려 돈을 빌려 준 앞집 친구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일을 하고 있다. 빌려간 친구가 오히려 우리와 어울려서 희희낙락 놀고 있는 것이다. 동네 친구들은 아예 그 돈 받기는 힘들겠다며 뒷공론을 하였다.
앞집 그 친구는 명동 지하통로나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보면 자기 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몽땅 털어 주고 온다고 한다. 그 당시 그 녀는 자기 집이 아닌 전세 집에 살고 있었다. 그 친구는 그 녀의 남편이 돈을 빌려서 우연히 증권에 투자해서 번 돈을 상가부동산에 투자하여 그 후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 다달이 나오는 임대료만 해도 노후 문제가 해결 되고 친척들을 고용하여 집을 관리 하며 안정되게 살게 되었다.
세월이 정말 한참이나 흘렀다. 자기가 살아 온 세월중에 나와 앞뒷집에 살면서 보낸 세월이 제일 행복했다는 그 친구...
물론 그녀의 남편이 번 돈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남에게 떼이면서도 돈을 빌려 주고 베푼 선한 일이 "베푼자에게 복이 돌아 온다" 는
말대로 결국 자기를 위하는 자선의 길이 되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6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