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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살이.                                                            청초 이용분

 

아직 이 곳에는 본격적인 봄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저 남옄 섬진강변에는 매화꽃이 봉오리를 열기 시작 하였다는 소식이 아직은 싸늘한 봄 바람에 실려 간간히 전해 온다. 올해는 유난히 춥고 겨울도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추위에 몸을 움추린 채 이제는 다시는 몸을 추스르지 못할것만 같이 두렵던 기분이 슬슬 풀리는 날씨와 더불어 기지개를 펴듯 어깨가 저절로 가벼워진다.이곳 농협 지하에 있는 슈퍼에 무어라도 새로운 반찬거리라도 있으면 사기 위해 들렸다.

 

겨우내 농부들이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상추 부추 시금치 아욱등 오이에 보라색 가지까지 여름철에나 맛을 볼수 있었던 가지 각색 야채들이 선을 보인다. 그러나 기대하고 산 부추가 제 맛이 안나고 냉이도 냉이 향기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내 옆에 머리카락이 반백이 넘게 희고 얼굴에는 여기저기 검버섯이 핀 할머니 한분도 반찬 거리를 사러 오신 모양이다.

 

그런데 연세로 보아서 이제는 느긋이 며느리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될것 같은 분인데 이것저것 고르는 품새가 어설프지가 않다. 나는 이 나이에도 살림 하기가 버거울 때가 많은데 어찌 그 연세에 손수 장을 보실까...할머니 지금 연세가 몇이세요.? ^^”

(나는 불현듯 호기심이 동해서 물었다.)그러나 빙긋이 웃을 뿐 답이 없으시다.

 

이것 저것 반찬 거리를 산 다음 엘레베이타를 타려고 하니 마침 그 할머니가 서서 눈빛으로 나를 반기는 듯이 처다 본다.

결국 함께 탄 엘리베이타 안에서지금 연세가 몇이신데 아직 손수 시장을 보세요? 할머니, 비밀이세요? ^^

나는 좀 장난끼 어린 웃음을 머금고 처다보며 애교 있게 다시 물었다.말하기가 챙피 해서요.”

한 팔십쯤 되셨어요?”

그렇게 보여요? 나는 구십이 훨씬 넘었어요.^^”

이렇게 건강하게 사시는데 무엇이 챙피하세요? ^^(어쩌면 저리 건강하고 용모와 행동이 말짱하실까 내심 놀래면서 나는 말을했다.)

 

마침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쪽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묵은 김치가 맛이 없어서 치아가 안좋아 햇 무로 얄팍하게 썰어 풋마늘을 넣고 깍뚜기를 담그려 한단다. 그 할머니는 며느리가 69세인데 S대 약대를 나와서 약국을 하다가 요즈음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래도 며느리가 자랑스러우신 모양이다.

 

훌륭한 며느리를 두셨군요.” 딸 둘에 아들 하나 그런데 구십이 넘은 이 노인이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고 그의 며느리네도 아들네를 따로 내어 놓고 독립을 해서 각각 살고 있단다. (이래서 지어도 지어도 집이 모자라고 값이 내리지 않는 이유를 알것만 같다.)보통 우리네가 일컫는 말 그대로 생전 안 늙을것 같던 샛파란 며느리도 세월 가서 나이가 드니 시어머니가 되었겠구나 싶다.

 

살 동안에 며느리 시집살이나 몹씨 안 시켰을까. 결국 모든 게 인간 관계에서 비롯 되는데... 항상 젊을것만 같았던 며느리도 늙어서 다시 시어머니가 되는게 눈 깜짝할 사이구나 싶게 인생이 잠깐이다. 이처럼 언제부터인가 가족들이 철저히 해체 되어 겨울 날 내리는 눈 싸래기처럼 제 각각이 되어 버린 요즈음 세태에 대해서 나는 마음속으로 약간은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늙은 며느리에게 페를 끼치기 싫어서 따로 산다고 말은 하지만 정말 인생의 말년이 이 보다는 좀 더 따뜻할 수는 없는 것일까.저 정도 나이에 이르면 좀 못 살더라도 자손들과 한 지붕 아래 오손도손 모여 살았던 옛날의 가족제도가 아련한 향수처럼 그리워 짐을 어쩔수가 없다. 누구든지 자식을 힘 들게 낳아서 애면 글면 키우고 어렵게 가르칠 적에는 막연하게나마 힘이 없어질 노후에는 한 시름 잊고 그들에게 보호를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전혀 꿈을 꾸지 않았노라고 말한다면 조금은 가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좋아지고 복지국가로 간다는 희망과 핑크빛 행복을 꿈꾸고들 있다. 하지만 가족이란 진정 고락을 함께 하는게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는 참 의미가 뭉개져 버린 청사진이 있을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 노인은 저만큼이라도 건강하기 망정이지 행여 병이라도 나면 결국은 누구의 신세를 지더라도 져야만 되는게 또한 인생살이다.그나마 힘이 있을때 우리 자신은 미리 복을 많이 지어 놓아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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