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풀을 태우면서... 청초 이용분
올해는 장마는 이미 끝났노라고 일기예보에서는 말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국지성
호우가 쏟아진다. 마치 남양의 스콜처럼....
지구환경 변화로 인하여 일기의 양상도 아주 많이 변한 듯싶다. 이삼 십년 전 이맘
때면 동해안 해수욕장 휴가는 포기해야 되었지만 최근에는 지금이 픽크다.
어제 밤 T.V에선 지구 온난화로 잘 살게 된 그린렌드이야기가 나왔다. 만년설로
뒤 덮혔던 빙하가 녹으면서 기온이 10도나 올라갔다. 전 같으면 동토대(凍土帶)라
꿈도 못 꾸던 땅에 딸기니 온갖 채소를 가꾸게 된 모습을 생생한 사진과 더불어
방영되는걸 보면서 말로만 듣던 지구환경의 변화를 실감했다.
아울러 지구생성 이래 수억 겁년을 잠자던 지하자원 개발과 오일생산의 꿈에
부푼 그들을 보면서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는 심오한 만고의
진리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이제 입추와 말복도 지났으니 일로 절기는 가을로 향해 달려가고 있다.
때를 만난 듯 풀숲에서 청아한 가을 귀뚜라미 소리가 귓가를 간 지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비가 온 후라 그런지 매미 소리는 좀 뜸하다.
절후의 변화를 먼저 감지했는지 급해진 요즈음 모기가 여간 극성이 아니다.
한번 물린 자국은 물파스나 (버물리) 호유를 바르지 않으면 여간해서 가라
앉지 않고 계속 간지러움에 긁적거려야 한다.
아파트에는 워낙 층이 높아서 그런지 별로 모기의 습격을 못 느꼈는데
이곳 아들이 사는 개인 집은 바로 앞에 정원이 있는 탓인지 요즈음은
매일 매일 모기와의 전쟁으로 잠을 못 이룬다.
여행을 다녀온 후 얼마 동안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부터 나무가 너무 커져서 온 마당에 그늘이 드리우니 잔디가 모두
사그라져 죽었다. 그 자리에 키가 낮고 둥근 주목이나 영산홍, 취나물 꽃 들국화 등
야생화를 모두 심어 놔서 이제 잔디는 없다.
예전에 마당에 잔디를 심었을 때에는 잔디 사이에 난 잡초 뽑은 것과 무성한
잔디 깎은 풀들을 설 말려 놓은 것을 저녁을 먹고 난후 매일 초저녁이면 대문
안 조금 빼꼼한 곳에 쌓아 놓고 모기 불을 지피곤 했다.
그 풀 타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바람결 따라 연기가 긴 머리를 풀어
헤친 것처럼 하늘로 향해 사방으로 퍼진다. 눈이 따거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피하면서 덜 말랐던 풀이 타면서 내는 그윽한 풀 연기 내움의 향기란...
그 연기에 모기들은 맥을 추지 못하고 몽땅 도망 가버리고...
내가 어릴 때 어쩌다 여름 방학 때 놀러갔던 시골 큰집이나 외갓집에 대한
향수도 불러일으키고...
저녁나절 집집마다 나지막한 굴뚝에서 솟아오르던 보릿짚을 때서 밥 지을 때 나는
연기 내움이 온 마당 자욱이 낮게 퍼지던 시골집...
그 광경을 멀리 좀 높은 산모롱이에서 내려다 보면은 집집에서 펴오르는 저녁나절
연기는 더 낭만적이고 정겹다.
빨리 달려가서 그 아늑한 품에 얼른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아직 어릴 때이니 모기 불 주변에 옹기종기 뫃아
앉혀 놓고 그 날 하루 중에 일어났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면서
너무 불을 휘저으면 불길이 일어나서 연기가 없어지니 효과도 떨어지고.
`불장난 그리 심하게 하면 너 밤에 오줌 싼다` 고 놀리기도 하고...
조잘조잘 대던 그 여운이 아직도 귓가에 살아서 맴도는데 아이들은 커서
이미 어른이 되어 있고 부모인 우리는 너무나 나이가 많아 졌다.
이렇게 모기에게 시달리면서 잠 못 이루는 이 밤에 왜 고등학교 시절 우리가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노변(爐邊)의 향사(鄕思) 모양으로 또 다른 그리움들이
모기한테 물리면서 괴로운 이 밤에 생각나는 건 어인 일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