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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일상들 ...                      청초 이용분

 

큰길 차도를 건너려는데 건널목에 계란만한 동그란 빵 한개가 떨어져 있었다.깃털 색이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이 빵조각 옆에서 고개를 갸웃 둥 거리며 주춤거리고 있었다. 쪼아 먹고 싶은데 껍질이 딱딱해서 못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흙을 쓱쓱 털고 그냥 사람이 먹었으련만 워낙 먹 거리가 흔하다 보니)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때마침 몇 발자국 앞에서 길거리 청소원이 빗자루로 떨어진 휴지 등을 쓸어 쓰레받기에 주워 담으면서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러자 이 비둘기는 깜짝 놀라 후다닥 낮게 날아서 도망을 간다. 순간 나는 "여기 이 빵 비둘기 먹게 둬 주세요" 하고 말했다. 발로 비벼 뭉개서 먼 곳에서 초조하게 이를 쳐다보고 있는 비둘기들에게 밀어 주었다.

 

다리를 저는 또 다른 바둘기가 황급히 이를 반긴다. 먹는 다는 것은 사람이나 이런 짐승에게도 아주 중요한 일이다. 어렸을 적 멋도 모르고 '사람은 먹기 위해 사나 살기 위해 먹나' 하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때 황해도 해주에 살던 시절인 일제시대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 무렵인가 부모님은 쌀을 옷장 뒤쪽에 숨겨 놓고 끼니 때마다 어머니가 조금씩 꺼내 밥을 지시던 생각이 난다. 심해진 일제의 식량 수탈에 대비해서 그러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기차 역에 가까운 곳에 곡식을 옮겨 싣는 장소에 떨어진 낙곡을 빗자루로 쓸어다 닭을 키우시곤 했었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로 퇴각하면서 너무나 굶주린 나머지 어린아이 손에 들려 있는 빵조각을 어른이 채트려서 냉큼 먹어 버렸다. 그러자  아이가 큰소리로 울부짖는 걸 본적이 있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않을 사람 없다고 한다. 황국시민 지배자로서 오만하기 짝이 없던 그들도 굶주림 앞에서는 체통도 위신도 모두 버렸다.

 

6.25 직후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보내준 잉여 농산물 원조로 안남미나 수수보리 옥수수 등에 의지하고 생명을 유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이북에 쌀을 보내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곡식을 큰 수송선에 싣는걸 보면서 우리도 외국에서 저렇게 보내준 곡식을 먹었겠지 하고 그 시절 생각이 절로 난다.

 

그 당시는 양식이 태부족하여 들로 나가서 쑥을 뜯어 밀가루를 조금 섞어 버무려서 쑥버무리를 만들어 먹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갖 나물을 뜯어 무쳐서 밥을 조금 넣고 비벼서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었다. 오히려 요즈음은 웰빙 식품이라 해서이렇게 먹는 게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안남미는 쌀알 길이가 기다란 게 진기가 없고 밥알이 풀풀 나른다. 언젠가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서 그런 쌀밥을 다시 먹어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차지고 맛 있는 우리 쌀에 입맛이 길든 우리에겐 차라리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것도 귀해서 배불리 못 먹곤 했다. 수수도 메수수였었는지너무 껄끄럽고 맛이 없어 어찌해 먹을 수가 없어서 그 당시로는 분수에 맞지 않게 대부분 수수엿을 고아 먹어야만 되었다.

 

돼지나 닭같은 가축도 지금처럼 외국에서 수입한 곡물 사료를 먹여 키우는 게 아니었다. 자기 집이나 이웃에 부엌 구정물 그릇을 놓고 쌀 씼은 뜬 물이나 설거지 밥찌꺼기를 모아놓아 윗물은 버리고 갈아 앉은 찌꺼기를 먹였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이런 찌꺼기를먹여 키우던 게 돼지였다. 지금처럼 먹고 남아서 버려야 될 음식물 찌꺼기가 있다는 건상상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즉 하면 여든 먹은 노인이 아들 환갑날 그 구정물통에 빠져 죽는다고 했을까. 요새는 구정물통이 어디에도 없다. 개도 사람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먹여서 키웠다. 지금 처럼 비싼 전용사료를 먹여 키운다는 것은 우리 나이 세대의 생각에는 글쎄 어째 고개가 갸우뚱 해 진다. 그 덕에 닭이나 돼지사육이 본격화 되면서 많은 육류를 먹게 되어 국민 영양보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허나 또한 국민 비만에도 일익을 크게 담당하고 있다.  5.16때 겪은 식량난도 잊지 못할 고난이었다. 그 해에는 심한 냉해로 인해 큰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회에서 주는 배급을 타기 위해 이북 사람들 처럼 긴 줄을 섰던 기억도 생생하다. 혼식장려에 분식 장려도 잊지 못할 고생이었다.

 

이제는 '보릿고개'라는 말은 고전에나 나오는 옛날이야기 거리가 되어버렸다. 나는 전에 아이들을 키울 때 식량난이 제일 무서워 가을이면 잘 마르고 제일 맛이 좋은 강화 쌀을 최소한도 일년 치쯤 열둬 가마를 미리 사서 작은 부엌방에 비축 하기도 했었다.

그러면 어느 날 기가 막히게도 쥐란 놈이 들어와서 같이 파먹고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최근에는 그때 그때 도정을 한 새 쌀을 사서 먹게 되었다. 전 처럼 그런 공포도 이제는 생기지 않는다. 최근에는 기가 막힌 먹 거리가 넘치고 이에 비례해서 비만이 전 국민적인 걱정거리로 부각되는 걸 보면서 격세지감을 절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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