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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과 누룽지와 귀뚜라미에 대한 추억                  청초 이용분

 

아침에 큰 아들 아이가 비행장으로 떠나는 걸 배웅하기 위해 일찍 현관문을 여니 무엇인가 조그맣고 시커먼 게 잽싸게 집안으로 기어들어 오더니 신장 뒤에 얼른 숨어 버린다바퀴벌레인가 하고 질겁을 했더니 남편이`아냐 귀뚜라미 같은데...` 하고 말을 한다그러더니 조금 있으니 신장 뒤 구석에 숨어서 찌릿 찌릿 약간은 메조 쏘프라노 음으로 처량하게 울기 시작 하는 게 아닌가

지금은 다들 상큼한 스테인레스 싱크대에서 그릇을 씼고 가스대에서 조리를 하고 난방은 따로 하고 하지만 예전에는 부뚜막이라고 그곳에 가마솥이나 양은솥을 걸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도 하고 난방도 겸했던 시절이 있었다지금도 시골 아주 후미진 깊은 산골에 가면 그런 식으로 난방과 식사를 해결하는 집들이 제법 있는 걸로 안다

50년 60년대 말 까지도 서울에서도 연탄을 때면서 그런 식으로 살았다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밥을 짓다 까딱 잘못하면 태워서 생긴 밥솥 밑에 늘은 누룽지는 밥을 하는 부엌 주인이셨던 어머니는 노상 누룽지 밥을 자시기 일 수였다물을 부어서 만든 구수한 숭늉은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영원한 향수로 남아 있기도 하다별다른 간식거리가 없었던 그 시절 어린 우리에게는 좋은 군것질거리이기도 했다.

 

가을이면 큰 고구마를 반을 딱 갈라서 밥솥에 쪄 주시기도 하고개떡이라고 밀가루에 소금물로 약간 간간하게 반죽을 하여서 강남 콩도 오다가다 조금씩 넣기도 하여 납작하게 만들어서 밥솥에 쪄서 뜨거운 것을 젓가락에 꼭 찔러서 손에 쥐어 주시면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그 또한 맛있는 간식 이었는데몇 해 전 터어키에 여행을 갔을 때우거지를 섞어서 찐 그와 비슷한 개떡 같은 걸 먹어 보고는 참 신기 해 하였다

 

내가 어렸던 그 당시는 일제 강점시절 일본이 전쟁 중이라 우리 한국인들의 삶은 고달프고 모든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형편없었다모든 게 지금처럼 발전되고 풍요로운 시절이 아니었다그런데 부뚜막은헌겁이 주재료였던 그 시절 운동화를 깨끗이 씼어서 엎어 널어놓으면 잘 마르곤 해서 아주 좋은 건조대 구실도 하고 겨울이면 출근하시는 아버지와 우리들의 신들을 신문지를 깔고 가지런히 놓아서 덥혀 놓아 주셔서 엄동설한 추운 날 아침에 집 밖을 나서 자 마자 우리의 마음을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시곤 했었다

 

그런데 부뚜막이 따뜻하고 밥풀 등이 떨어져 있어서 가을이면 귀뚜라미가 부엌 안 어떤 틈새기엔 가 살고 있어서 밤에 잠을 자려고 따뜻한 방에 누워 있으면 부엌에서 "찌릿 찌릿하고 우는 그들의 청아하고 처량한 울음소리를 밤새도록 듣곤 하던 옛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귀뚜라미도 요즈음은 대량으로 키워서 애완동물인 도마뱀이라던가 하는 파충류의 먹이로 수출도 하는 것을 언제인가 T.V 에서 본적이 있다몇 년 전인가 에도 이맘 때 쯤인가 집안에 모르는 사이 귀뚜라미가 한 마리가 거실마루로 뛰어 들어와서 밤이 되면 정말 환상적인 소리로 찌릿찌릿 우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냥 두자 커니 다른 식구들은 벌레라고 하면서 F킬러를 뿌려서 그만 유명(幽明)을 달리하게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얼마나 마음이 언짢았는지 두고두고 그 귀뚜라미 이야기를 하곤 했었는데..아직은 날씨가 덜 추우니 정원에 돌아가서 좀 더 가을을 구가하게 해야 되지 않을까.

그곳에 가야 자연스러운 먹이와 마실 이슬도 있고 땅속에 알도 낳아야 될 터 인데..오늘 날씨가 쌀쌀하니 잽싸게 집안으로 뛰어 들어온 이 귀뚜라미를 그냥 두어야 하나 아니면 정원으로 쫓아내어 버려야하나 고민을 하게한다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니 새삼스레 따뜻한 구들 아랫목과 누룽지 숭늉을 마시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돌이켜 보면 이 누룽지 숭늉을 안먹게 되면서 거금 천문학적인 국가의 외화를 소비하는 커피를 수입해서 마시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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