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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이사 가던 날                  청초 이용분

 

 앞집이 또 이사를 간다고 한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집 친정어머니의말이다그 터는 본 주인이 오랜 동안 세를 주고 있어서 우리가 사는 십 여 년 동안 벌써몇 번인가 사람이 바뀌었다이제 좀 알아 볼만 하면 이사를 가는 통에 미처 낯을 잘익히기도 힘들다.

 

이번 사람은 처음에는 딸이 맞벌이를 한다하며 집 가까이 사는 외할머니가 오가며 두외손자를 거두며 딸네 집안 살림을 보살펴 주는 것 같았다도시인 같지 않고 무던한그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정이 들었다얼마 있자 딸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아이를키우게 됐다며 애들 엄마가살림을 하게 된 모양이다

 

두 남자 어린이는 보통 요즘 아이들처럼 개구장 스럽고 수선스럽다그 애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면 우리 집 현관 문밖이 항상 시끌벅적하다.무슨 물어 볼 일이 있어 잠시 그 집 현관문이 열려 드려다 보니 문간방에서 피아노를 제멋대로 두드리는 소리도 요란하다

 

외출을 하려 복도에 나서면 아이들 소리가 문밖으로새어 나오고 있다집안은 항상 떠들썩하다우리가 둘만이 사는 조용한 분위기와 달리활기찬 그 집 분위기에 젊은 날 우리도 아이들 셋을 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미소를 짓곤했다.

 

어느 날 전주에서 우리 손자아이가 우리 집을 다니러 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그 집 손자들과 마주치게 되어 인사를 시켰다마침 두 아이가 모두 초등학교 똑 같은삼학년이라 좋은 친구가 되려나... 하고 기대했는데 두 녀석 모두 꼬리를 감추고 피하는통에 성사가 되지를 못했다

 

개구장스러운 것과 아이들 간의 친화력은 별개인가 보다.한 동안 지난다면 친해 졌겠지그래도 그 아이들을 만나면 마치 내 친 손주를 만난듯 정답게 말을 건네고 눈길을 주었다그런데 그들이 이사를 간단다.

 

어느 날 이삿짐 센타에서 푸른 상자를 잔뜩 들고 그 집안에 들어서는 게 보였다.드디어 이사를 가는 게로구나아무래도 마음이 쓰여 내다보니 이사 갈 주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나는 집안에서 감을 잡으며 마음이 섭섭하다인사를 오겠지...이삿짐은 다 실려 나갔는데 작별 인사가 없다

 

그 친정어머니가 며칠 전 내게 건넨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생각하나 보지...그렇게 안 보았는데 역시 요즘 사람이었구나.그렇게 하루가 지났다평소 나누었던 그 이무럽고 유난하지 않았던 그들의 행동이모두 부질없던 허사로구나...

 

그간 진심을 주고 그 집 아이들에게 쏟았던 나의 사랑과비슷한 관심이 모두 쓰 잘 데 없던 것이었네... 공연히 배신감마저 느껴지고 서운하다.앞집도 사람이 살 때와 달리 이사를 가버린 텅 빈 집안의 교교함이 낯설다.다음 날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공연히 마음이 괴롭다

 

내가 끼치는 사람과의 관계에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무엇이 문제였을까...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밖은 어둑하고 하루가 저물어 간다그때다현관 벨이 띵똥 띵똥’ 이 늦은 시간에 누구일까.누구세요?”앞집이에요.”나는 허겁지겁 현관문을 열었다그곳에 앞집의 그녀가 손에 무엇인가를 내밀며 웃고 서 있는 게 아닌가.'나의 기대를 무너트리지는 않았구나.'나는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난 그냥 간줄 알았잖아.”내 눈에는 나도 모른 사이 눈물이 그득하게 고여 막을 새도 없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사연인즉 마침 누가 떡을 주기에 가지고 작별 인사를 왔다면서 남편이 미국지사에 발령이나서 이삿짐을 먼저 보내고 4월말이나 되 야 미국으로 가게 된단다

다음 사람이 이사 올때까지는 집은 비어 있을 것이고 자기네는 그때까지 친정집에서 기거를 하게 되어서 짐정리를 하다 보니 이렇게 인사가 늦었단다.그가 건네준 것은 하얀 팥 게피 고물이 듬뿍 든 인절미였다지금 앞집은 비어 있다.사람이 안산다고 생각하니 공연히 썰렁하다그 후 인사차 들린 그 아이들 아빠에게 내 자전적(自傳的)수필집'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한권을 기념으로 전했다.그간 푸른 나무 숲속에 깃든 새들처럼 지저귀며 설쳐대던 그 이웃 집 아이들의 활기넘치던 소리가 이제 긴 여운처럼 아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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