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2.06.10 15:50

수필)유월의 이야기

조회 수 1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유월의 이야기                               청초 이용분

 

요즈음은 매일 훤하게 날이 밝아오는 새벽녘에 날아다니면서 영롱하게 우짖는 새들의 소리에 눈을 뜬다우리 아파트 뒤쪽 개울 둑길을 따라 심어 놓은 나무들이 십여 년 간 자라나서 어느 해 부터인가 아주 울창하게 우거졌다해마다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온갖 새들이 모여 하루 종일 노래의 향연을 편다그중 내가 아는 새는 고작 개똥지바퀴 새뿐이다.

 

아파트에 이사를 온 후 포기했던 새들의 울음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니 새삼스러이 행복감에 젖게 된다며칠을 집안에서 꼼짝을 안하다가 늦은 점심을 사 먹을 셈으로 개울을 따라 뒷길로 주욱 연결된 조금은 경사진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그늘진 벚나무 아래 길바닥이 검은 벚지 색으로 물이 들어 얼룩덜룩 하다벚지가 아직도 까맣게 농익어서 매달려 있다때 마침 몇 사람의 일꾼들이 개울 둑 경사진 면에 맥문동 모종을 심고 있다.

 

이 묘목은 잎이 난초처럼 생기고 그늘진 곳에서도 잘 큰다가을이면 잘디 잔 연보라색 꽃이 핀 다음 작은 머루 알 송이 보다 좀 작은 까만 열매가 열린다약용으로도 쓰이는 걸로 알고 있다그냥 푸른색 풀들이 무성해 있어도 좋으련만 나라에 세금이 잘 걷혀 주머니가 두둑해 지니 손이 근질근질전 국토공원화 정책의 일환인가 보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6월의 하늘은 푸르고 생기가 넘친다제 때에 가면 사람들이 항상 북적거려 기다리는 게 싫어 일부러 늦게 가서 '가는 바지락 국수점심을 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예의 텃밭 사이를 또 지나가 보기로 했다지난 번에 썼던 '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월'의 속편인 셈이다.

 

이제 사람들이 심어 놓은 모든 채소들이 제철을 만난 듯이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다고였던 물길이 말라서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 낮고 좁은 도랑 둔덕에 뜻밖에도 돗나물과 야생 돌미나리가 무성하다이건 먹는 나물인데 간에 좋다고 한다아무리 그래도 동행이 기다려 주지 않으니 그냥 포기하고 따라 가는 수밖에...

 

철사로 둘러쳐 놓은 울타리에 다홍빛 넝쿨콩 꽃이 철사에 몸을 매달고 피어있다묘령의 여인의 얼굴에 그린 예쁜 색 맆 스틱처럼 하도 예뻐서 옆으로 지나가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마디 사이가 길쭉해서 원래의 제 잎은 멀리 두고 키가 큰 아주까리 잎이나 그 외의 다른 푸성귀의 연초록 이파리에 둘러 싸여 그 요염한 빛깔을 뽐내고 있다.

 

문득 나의 젊은 날 우리가 뜨락이 있는 집에 살 때 생각이 난다앞마당의 발코니 높다란 나무 난간에 기다란 줄을 매달고 심어 놓았던 이와 같은 종류의 넝쿨콩 꽃 생각이 났다어느 친구가 주어서 얻어 심은 빨간 콩 꽃이 줄을 따라 예쁘게 대롱대롱 매달려 한창 피어 났다.

 

어느 날 친정 동생내외가 남자 조카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놀러 왔다때마침 줄을 따라 빨간색으로 콩 꽃이 곱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오자마자 말릴 사이도 없이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작대기로 이유 불문 이 넝쿨콩 꽃을 휘둘러 무참히 뭉개 놓아 버렸다그 애석함이란... 이런 일은 얼른 잊어 버려야 되는데 때때로 이렇게 생각이 떠오른다이제 그 아이는 잘 커서 어른이 되어 그 나이 또래의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공무원으로 잘 살고 있다.

호박은 맨 처음에 난 거친 이파리를 달고 순이 뻗어 커질수록 연한 호박잎과 덩굴을 따라 꽃들이 핀다어쩐 일인지 호박이 열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시들어 오그라든 호박꽃을 비집고 호박벌이 온 몸에 노란호박 꽃가루를 잔뜩 묻혀 가지고 기어 나온다.

 

지난번 왔을 때 비실비실 시들어 가던 그 고구마 순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이파리와 넝쿨들이 억세게 뻗고 있다이제 럭비공처럼 생긴 갸름한 다홍색 껍질의 고구마가 땅속에 열리면 밭이랑 흙이 쩍 벌어지면서 고구마가 굵어 갈 것이다.

 

뒤 늦게 열무 씨앗을 뿌렸는지 자로 재고 뿌린 듯한 열무가 일렬종대로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처럼 서로 좁은 틈을 비집고 새싹이 돋아나 있다이 밭주인은 서투른 농삿군임이 분명하다원래 씨앗은 조금 넓게 훌훌 뿌려야 성글게 나면서 씨앗도 덜 들게 마련이다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그랬겠지만 그렇게 촘촘하게 심으면 솎아낼 때 뿌리가 함께 뒤엉켜 뽑혀서 애를 먹게 된다.

 

구조도 멋있게 만들어 세워놓은 양은 밭침 대에 스프링 같이 생긴 가느다란 나사넝쿨로 감고 올라가 오이꽃이 한창 피었다시든 꽃이 달려 있는 밑을 드려다 보니 손가락만한 작은 오이가 꼬부라진 고리모양으로 몇 개 매달려 있다오이는 진드기가 많이 끼므로 농약을 자주 뿌려야 제대로 반듯한 오이로 큰다잘 자라지 않고 오그라든 오이를 보면 진딧물이 잔뜩 끼어서 열매가 크지를 못 한다조금은 애를 먹이는 작물이다흙이 안 묻었어도 오이는 농약을 아주 많아 치니 잘 씻어 먹어야 안심이 된다.

 

연보라색 가지 꽃들이 한창이다이 꽃은 피었다 하면 틀림없이 기다란 가지 열매를 맺는다가지 꽃과 가지는 동색이다오이나 호박은 꽃받침 밑에 작은 열매를 달고 있는 암꽃이라야만 열매가 여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가지 나무의 줄기와 뿌리는 겨울에 발이나 손에 동상을 입었을 때 그 가지 나무를 태우거나 삶아서 미지근한 그 물에 여러 번 발을 담구면 얼음이 빠지는 약효가 있다.

 

어쩐 일인지 둥그런 머우가 울타리 밖에 버려진 듯 자라고 있다누군가가 그래도 이 나물을 알았기에 근처에 심겨져서 자라나고 있겠지... 살강 아래 떨어진 수저다나는 농사를 지어 본적은 없다크면서 친정 할머니가 집에 달린 텃밭에서 채소 농사를 지으실 때 어깨 너머로 보고 알게 된 것이다.

 

바람 결 따라 노랑나비가 꽃을 찾아 너울너울 날아간다멀찌감치 피어있는 노란 빛깔의 쑥갓 꽃을 향해 이리 비실 저리 비실 교묘히 디카의 렌즈를 피해서 멀리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제 6월도 하순을 향해 쏜살 같이 달려가고 있다이해도 벌써 반은 지난 셈이다요즈음 건강에 자신이 없는 나는 한 해를 살고 나서야 무사히 한 해를 넘겼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이 아름다운 세상!"

하고 누군가가 찬미했듯이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에 오면 막혔던 숨도 시원하게 확 트이고 한껏 팔을 벌려 하늘을 처다 보며 큰 숨을 내쉬게 된다그런 맛에 사람들은 큰 수확도 없는 이곳에 매달려 이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구나 하고 이해가 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871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 이용분 2022.07.23 7
6870 인천대학교 INU 앙상블: 스케이터스 왈츠(The Skater's Waltz) 1 이용분 2022.07.22 52
6869 ❤️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 이용분 2022.07.20 28
6868 수필) 여름 밤 하늘의 별빛 이용분 2022.07.19 114
6867 수필)취미생활 금붕어 키우기 ... 이용분 2022.07.16 106
6866 이용분 2022.07.16 2
6865 이용분 2022.07.12 91
6864 비발디의 사계 이용분 2022.07.10 4
6863 ♥한.아.비.를 아시나요?♥ 이용분 2022.07.09 53
6862 ■ 백수(白手)■ 이용분 2022.07.09 35
6861 수필) 한치 앞을 모르는 세상사 이용분 2022.07.08 69
6860 수필)삶의 질(質) 이용분 2022.07.04 38
6859 수필)지하철 안 인심 이용분 2022.06.30 3
6858 처마와 제비집 / 鄭 木 日 이용분 2022.06.29 84
6857 수필)** 우리 모두 이웃에게 조금만 더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이용분 2022.06.28 30
6856 막걸리는 유익균 덩어리다. 이용분 2022.06.26 36
6855 온갖 새들의 향연장에 초대합니다. 이용분 2022.06.26 5
6854 수필)세월이 지나면 잊혀지는 세상사 !! 이용분 2022.06.25 51
6853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모윤숙시) 6.25동란(動亂) 발발 일(日)에 즈음하여... 이용분 2022.06.25 23
6852 수필)비 속에서의 행복 . 이용분 2022.06.24 30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354 Next
/ 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