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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5 22:48

수필) 쌀을 사오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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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사오던 날                     청초 이용분 

 

오늘은 남편과 조금 큰 시장용 손수레를 끌고 쌀을 사러 가기로 했다.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 앞산의

물맛이 아주 좋은 샘물이 졸졸 흘러 나오는 샘터에서 물을 길어다 먹을 때 쓰던 것이다. 수레도 오래 쓰다

보니 반짝이던 스테인리스에 녹이 쓸고 많이 낡았다. 요즘 사람 차 바꾸듯 하면 벌써 버렸을 물건이지만

우리는 그냥 두고 종종 쓰고 있다. 좀 작고 아주 가벼운 수레가 또 있어서 그것을 쓰느라 뒤 곁에 두었더니

제 절로 세월의 무게가 들어 난다.

 

날씨는 전형적인 이른 가을 날씨다. 이곳 농협슈퍼에서는 쌀을 살 때 자기가 직접 가져 가면은 천원을 덜

받는다. 생활용 필수품을 살 때의 물가 감각은 단 몇 백 원이라도 아주 비싸게 느껴진다. 다른 반찬거리도

살 겸 함께 쌀도 사오니 별 다른 수고랄 것은 없기도 하여 매번 그리 해 왔다.

20Kg짜리 쌀 포대는 기운이 달리는 요즘의 남편이 들기에는 제법 무겁다. 

 

쌓여있는 쌀푸대를 직원이 내려 실어 주었다. 여러 가지 반찬거리를 사는 중 버섯을 많이 사고 상추, 부르크

리, 깐 마늘, 콩나물 .두부 한모, 팩에 든 순두부 등을 샀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부추는 다른 날에 비해

오늘은 비싸서 사지 않았다. 남편의 식성은 나물류를 아주 싫어한다. 국을 끓여도 국 국물만 꼭꼭 짜 먹고

건더기는 그냥 내 놓는다. 신혼 초에는 콩나물국을 끓이면 그는 국물만을 먹어서 건더기만 남기고 나는

콩나물 건더기만 먹어서 국물만이 남고는 하였다. 봄에 얼마나 좋은 봄나물들이 많이 나는가. 나는 특히

취나물의 향기를 좋아해서 취나물을 아주 많이 사먹었다. 들기름에 슬슬 볶아서 막장에 들깨가루를 뿌려

무치면 그 향취가 얼마나 좋은지... 나는 먹고 또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한 식탁에 앉아서 먹으면서 아무리

그것을 권해도 외면을 하던 그가 요즘 나물을 들기 시작했다.

 

웬일인가 궁금해 물었더니 막내아들이 부루클리와 나물을 많이 자셔야 건강에 좋다고 했다나...

양배추 버섯도 젓가락이 안가더니 딸이 많이 자셔야 좋다고 했다나...

50년이 넘게 산 내 말은 안 듣고 아이들 말은 잘 듣는다. 내 참 기가 막혀서...

평생 내가 시켜서 손해 본 일이 많았나...

방법은 여하 간에 나물을 잘 드는 그가 고맙다.

 

돌아오는 길. 학교 옆 넓은 공터 한 옆에서 늙수그레한 부부가 항상 뻥튀기를 튀겨서 판다. 쌀, 옥수수,

보리쌀, 흰 가래떡을 썬 떡국용 떡점 말린 걸 튀긴 것 등을 늘어놓고 판다. 그 중에 가을에는 밤을 튀겨

판다. 남편이 그걸 좀 사 먹자고 한다. 둘이 먹기 위해 사기에는 량이 너무 많다. 큰 깡통 하나 가득 수북한

걸 튀겨서 만이천원이라나. 량도 너무 많고 값도 쎄다. 아무튼 가는 길에 값만 물어 보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 해 보기로 했다. 나중에 제사상에 올려놓을 일이 아니라 당장 사서 먹잔다. 

 

솔직히 나도 먹고 싶어도 못 사 먹은 게 많다고 말을 하며 결국은 그 밤 튀기는 걸 사기로 했다. 튀겨 놓고

조금씩도 덜어 파는 게 아니라 한방 튀겨야 되는 것이라 아무래도 량이 너무 많다. 하는 수 없이 알면서도

기다려서 튀기기로 했다.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 다른 그릇에 골라 놓은 밤을 하나 집어서 밤이 달기나

한가 맛을 보려니 썩은 밤이다.

"이것은 썩었네요." 했더니 "하필이면 그걸 자셔요?" 하면서 성한 밤을 큰 걸로 두개나 골라 준다.

 

"남의 파는 비싼 물건을 함부로 먹을 수 있나요" 했더니 하나는 남편 것이라나... 보기에 강파르게 생긴

영감님이 보기와는 다르게 인심이 후하다. 튀기는 장비를 보니 밧테리로 핸들을 돌리고 연료는 프로판가스다.

앞에는 보니 오토바이에 튀기는 천막 칸을 붙여서 끄는 모양이다. 상당히 현대화 시킨 뻥튀기 장수다.

 

자세히 지켜보니 물에 적신 밤알 하나하나에 칼집을 낸다. 허기야 그냥 맨 밤을 튀기면 팝콘처럼 흐트러지게

튀겨져서 알맹이가 모두 풍비박산이 날 일이다. 역시 손이 가는 일이라 밤알 하나하나 칼집을 내려면 손목도

아플 것이다. 세상에 그냥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좀 뚱뚱하고 젊은 여인이 앉아 있더니 그 여인이 그 일을

한다. 

서서히 김을 빼니 '피식' 소리가 나면서 뚜껑을 여니 다 튀겨졌다. 맛이 제법 괜찮다. 이래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튀겨 가나보다.

아이들을 키울 때 같으면 앉은 자리에서 거덜이 날 일이지만 우리는 너 댓개 먹으면 만족할 일인데... 

요즘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익은 것이니 상할까봐 결국은 냉장고에 넣어야 될 것이다. 다시 무거운 쌀을 끌고 아파트로 올라가는 경사진

길을 막 올라 가려는 순간이다. 느닷없이 어떤 어린 소년이 나타나더니 남편이 끌려는 수레 손잡이를 빼앗듯이

붙잡고

“제가 끌어 드릴께요.“ 하고 끼어든다. 남편이 ”얘야 괜찮다. 무겁다. 말만이라도 고맙다.“ 사양을 한다.

 

그 순간 그 무거운 걸 끌려면 남편이 얼마나 힘이 들까’ 하는 생각이 미치자 

“그래, 그럼 네가 좀 도와줄래?^^” 

남편을 한편으로 밀어 내고 그 소년에게 수레를 맡겼다. 물론 내가 뒤에서 밀고 거들어 주기는 했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몇 학년이니” 했더니 “삼학년이에요” 한다. “우리 손자가 2학년인데...너처럼 날씬하고 미남이야. 고맙구나.^^”

 

경사가 져서 그렇지 거리는 불과 몇M, 그리 멀지가 않아 금세 끝이 났다. 멋쩍은 듯 그 소년은 빠르게 뛰어서

달아난다. 가다가 뒤를 돌아 다 보기에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오늘 그 애는 얼마나 마음이 흐뭇했을까. 

 

힘든 할아버지를 도왔다는 생각과 제가 무거운 걸 끌 수 있는 힘에 대해서도 남자 아이로서의 자신감과

긍지로...

우리도 마음이 설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수호천사처럼 저런 어린이가 자라고 있다는 흐뭇함에...

그런데 불시에 일어난 일이라 밤이라도 몇 알 줄 것을... 

사진도 못 찍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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