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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와 제비집                  鄭 木 日

한옥마을이나 시골의 기와집 처마 밑에 제비집이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한옥에 가면 대청마루에 잠시 앉아 자연 풍경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싶어진다.
처마는 집의 바깥 쪽 기둥을 연결한 선에서 지붕 끝까지의 서까래 아래 공간을 말한다. 처마는 햇볕의 양을 조절해 주어서 여름을 시원하게 겨울은 따뜻하게 해준다. 처마는 집안과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보호망 같다. 한옥은 단순한 구조이긴 하나 온돌방, 마루, 처마라는 특수한 공간을 연결해 실용적이면서도 미적인 조형성을 살려내고 있다.

처마는 생명 공간이다. 새봄이 오면 강남 갔던 제비가 집을 찾아 날아드는 곳이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傳令使)는 매화(梅花)이지만, 가을에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났던 제비가 용케도 처마 밑 둥지로 돌아와 주인 식구들에게 “지지배배…….” 반가운 인사를 나누어야 비로소 집안으로 봄이 찾아온 것을 느낀다.

제비가 처마 밑 둥지에 새끼를 낳게 되면, 집안은 생동감이 넘친다. 어미 제비가 물고 온 먹이를 서로 받아먹으려 새끼들이 일제히 입을 벌리는 모습이 귀엽고도 사랑스럽다. 처마는 제비의 보금자리가 되고, 새끼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옥은 사람만이 사는 거주 공간만이 아닌, 봄이면 어김없이 먼 남쪽나라에서 제비가 바다를 건너 제 살던 둥지를 그리며 찾아오는 곳이다. 한옥에 처마라는 공간이 있기에 제비에게 집을 제공하고, 겨울 동안 헤어져 있던 것을 아쉬워하며 봄이면 재회(再會)의 기쁨을 나눈다.

한국인들과 제비는 한 식구처럼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아닐 수 없다. 제비들이 나는 모습을 보면서 처마 바깥으로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며 비상(飛翔)을 꿈꿔보기도 하고, 봄이 와 제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리워했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기와지붕의 곡선에서 돋보인다. 부드럽고 온화한 선은 지붕의 처마가 공중으로 흘러가는 듯하고 전체 지붕의 맛을 살린다. 밋밋하게 직선으로 돼 있지 않고 바깥쪽으로 날개를 편 채 날아가는 듯하고 휘어진 수양버들처럼 나긋하고 늘씬하다. 처마의 선은 주변 사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평화와 정겨운 미소를 보여준다. 제비가 날아가는 멋진 모습처럼 보인다.
처마의 선은 버선코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대궐이나 사찰 같은 곳에선 처마 끝에 단청을 올리고 연꽃문양을 수놓았다. 하늘에 연꽃 향기를 띄워 보내고자 했다.

한옥의 처마는 자연과 만나는 문이 아닐까. 자신만의 삶만 알고 자연 속의 일부인 것을 모른 채 지내는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 곳이 아닐까. 마음의 여유와 휴식과 지혜를 제공하는 공간이 아닐까.
안과 바깥의 경계이면서 양 쪽을 품어주는 한국인만의 여유와 배려의 장치일 듯싶다. 처마를 통해서 영원과 만나게 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하려 한 조형물이 아닐까.
처마를 보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구름의 손짓과 산들바람의 촉감, 비에 젖은 풀꽃 향내, 번개와 뇌성……. 어미 제비가 낮게 나르며 둥지로 돌아오는 모습도 보인다.

처마의 선(線)은 반듯한 직선이 아니다. 휘어지며 치솟아 오르는 곡선미는 주변의 산 능선과 강물의 유선(流線)을 닮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어미 제비가 곡선을 그으며 처마 밑 둥지로 돌아오며 “지지배배……” 새끼들을 부르고 있다. 둥지에서 새끼들이 일제히 주둥이를 내놓고 반긴다.

한옥은 사람만의 생활공간이 아니다. 먼 이국에서 찾아 올 제비를 기다리며 반가운 재회를 갖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처마는 비어 있는 듯하지만, 비를 피하고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며 제비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배려의 공간이다. 한옥이 아닌 아파트나 주택에 살면서 편리는 얻었지만, 손님을 맞을 사랑방이 없어지고 제비가 깃드는 처마가 사라져버린 것은 서글픈 일이다. 도시인들은 전자제품들로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빗소리와 새소리를, 달빛과 별빛을 잊어버린 줄 모른 채 살고 있다.
제비집과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자연 속에 지은 한옥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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