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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30 12:04

수필)지하철 안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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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 인심                                  청초 이용분


    •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마침 중간에 자리가 나서 앉으려고 보니 옆
사람의 하얀 옷 한 자락이 걸쳐 있다. 워낙은 옷 주인이 얼른 여며야 될 일인 것
같은데 그러질 않는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옷자락을 한옆으로 걷어 올리고 앉았다.

때마침 그녀의 휴대폰이 울린다. 조용조용 말을 하는 품새가 너무 교양 있고 음성도
드물게 아주 감미롭다. 나는 그의 참한 음성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듣고 있었는데
그녀가 일어나서 내리려는 모양이라 그때서야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중년이 조금 넘은 여인이다. 상의는 앞섶이 하얀 면 레이스로 된 스타일인데
내가 그 옷자락 끝을 비켰던 셈이다. 음성이 마치 성우처럼 아름다운 그 녀와
말을 좀 건네 보고 싶었는데 너무나 빨리 그냥 그렇게 내려 가 버렸다.

어째 남자가 입기엔 너무 짙은 파랑색 바탕에 가는 줄이 선 상의샤쓰를 입은 40대
후반의 좀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가 앞에 섰다가 그 자리에 앉았다. 남자가 입기에는
색깔이 어째 좀 내 마음에 썩 안 드는 색이다. 남의 옷 색이 어떤들 무슨 상관이랴...
그냥 그렇게 생각을 하였을 뿐이다.

전동차가 그 다음 역에 서자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애띠고 좀 통통한 아가씨가
내 앞에 섰다. 그녀는 무엇인가 물건이 하나 가득 담긴 퉁퉁한 비닐봉투 짐을 들었다.
마치 아주 큰 곰 인형을 팔 안에 버겁게 끌어안듯이 들고 몸이 좀 가녀린 친구와 함께
서서 간다.

다른 사람들은 타자마자 지하철 선반에 큰 물건을 올려놓는다. 바로 내 눈 앞에
그가 너무 편치 않게 떡하니 서 있는지라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아가씨 그 짐 선반에 올려놓으면 어떨까. 무겁잖아?^^”
“괜찮아요. 무겁지 않아요.“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운지 미끄러지는
비닐 봉투를 다시 다잡고 한다. 보다 못한 내가 다시
”그 물건, 내 구두위에 올려놓으면 내가 봉투 끈을 붙잡으면 되지 않을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영 고집을 꺾지 않고 그냥 품에 끌어안은 채 안깐임을
쓴다. 지하철 칸 바닥에라도 내려놓으면 보는 내가 좀 괴롭지 않겠구면서도...

그냥 그렇게 말씨름을 하고 있는 찰나 옆에 앉았던 그 파랑색 샤쓰의 아저씨가
그 짐을 잽싸게 나꿔채더니 자기 무릎 위에 끌어안았다.
“영, 어른들의 애를 달구는구만. 무겁기도 하네...”
이 광경이 모든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가 된 모양이다.
“그 안에 요즘처럼 그 무슨 오 만원권이라도 하나 가득 들어 있는 거야?
어디 좀 보자.^^”내가 농담 비슷하게 말을 했다.
듣고 있던 옆 사람들이 폭소를 자아낸다.

예전 같으면 의례히 앉은 사람이 선 사람의 짐을 맡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는
자연스런 인심이었다. 이제 그런 흐뭇한 광경은 여간해서 만나보기 힘들어 졌다.
모두들 옆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스마트 폰 속에 머리를 푹 숙이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앞사람의 사정이 어떤지 차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모두 딴 나라에서 온 외계인들처럼 무표정 하다.

손이 자유로워 진 그 여학생은 아주 편한 모양이다. 머리도 매만지고 옷매무새도
고치고 휴대폰도 드려다 보고, 모처럼 물 만난 새가 제 깃털을 다듬듯 하는 모습이다.
남이라도 이렇게 편해진 모습에 기분이 흐뭇하다. 드디어 그 여학생이 내릴 역인
모양이다. 짐을 받아 들고 고맙다는 인사로 수도 없이 모두에게 고개를 조아린다.

"몇 살이니?”
“스무 살이에요”
이제 갖 고등학교를 졸업한 풋내기 대학 1학년 또래다. 아마도 세상이 조금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나도 그 푸른 샤쓰의 아저씨에게 무언의
인사를 보내며 지하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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