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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어름이 살짝 언 동치미국이 땅의 기운과 어우러져서...    청초  이용분

예전에는 이맘때면 동네엔 김장시장이 서고 김장거리 상인들이 배추를 마치
연탄 쌓아 놓듯이 쌓아놓고 몇포기 사려는 사람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상대도 해주지 않아서 찬밥 취급을 당하기 일수였고 많이 사는 사람만이 도매
시세로 좀 싸게 사가지고 리야카에 싣고 왔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큰 비닐 봉투에 네댓포기씩 넣어 가지고 내용은 볼 필요도
없다는듯이 그냥 돈주고 사가면 된다.
갓과 쪽파를 사는데 어떤 젊은 주부가 파 김치를 담는다면서 좀 굵은 파를 사야
다듬기가 좀 수월하다고 말하면서 큰 단을 열심히 고르기에
"편할려고 모두 까놓은 파를 사먹는 사람도 많은데 알뜰하시군요..." 하였더니

"그럴라치면 무얼 하려고 이 세상 살아요?" 하고 의외의 반응이다.
아직 젊은 사람중에 이렇게 알뜰한 주부들도 많구나 하고 안심이 된다.

배추를 사가지고 돌아 오는데 어떤 허름한 중년 남자가 바구니도 안 달린 간이
손수레에 하나 가득 싣고 가던 배추가 한쪽으로 기울면서 수레도 넘어지고 배추도
길에 흐트러졌다.

그랫더니 남편 인듯한 그 남자는 부인인 듯한 여자를 보고 무엇 때문인지 큰길
한가운데에서 험상 궂은 얼굴로 손짓을 해가면서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거리가 멀어서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다시 실어 가지고 가면 될 일이지
왜 저리할까 ? 우리는 그 부인의 무참한 표정을 물그러미 쳐다 보면서 아직도 저런
험한 남편들이 있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 남자 용감도 하다, 요새 여자들이 얼마나 위상이 당당해 졌는데...'요즘은 
( 저러다 여자가 안 산다고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려고 저리 하누? )
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요즘은 김치 냉장고가 있으니 이제 마당에 김치 독을 묻을 구덩이를 팔 일이 없어졌다.
해마다 그 땅파는 일도 남자들에게 큰 일이라면 큰 일이었다.

김치를 담근 다음 날씨가 계속 따뜻하면 땅에 묻은 김치가 한꺼번에 모두 익어서
너나 없이 집집마다 김치국물이 부글부글 넘치면 주부들의 마음도 덩달아 애가
달았지만 이제 김치냉장고에 넣어서 온도를 마추어 놓으니 걱정할 일은 없다.

이제 김치도 무시못할 좋은 건강식품으로 알려저서 어느날 부터인가 격상이 되어
세계인의 입맛을 매료시키는 자랑할만한 한국의 고유식품으로 유명해져 가고 있다.

엉뚱하게도 바다 건너 미국에서 11월 어느날인가 '김치의 날'을 제정하고 이를 기념한다고 한다.

푸라스틱 그릇이나 비닐봉지에 담긴것 말고 질그릇 단지에 김치를 담가서
땅에  묻으면 겨울에 어름이 살짝 언 동치미국이 땅의 기운과 어우러저
목구멍이 찡하고 가슴까지 시원하던 동치미의 국물 맛이나 시원 매콤하던
김치국물 맛이, 이제 대부분의 아파트나 김장 독을 묻을 땅이 없는 집에서는
전해 오는 옛날 이야기 처럼...

아 ! 찡 하고  시원하던  그 맛 !  하고...
이제 영원히 잊지 못할 한낱 추억이 되어 가는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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