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창호지 안에 빨갛고 샛노란 단풍잎을 붙여 넣어서...

by 이용분 posted Dec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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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호지 안에 빨갛고 샛노란 단풍잎을 붙여 넣어서...                     청초 이용분

 

푸르던 앞산의 숲이 다시 덧칠을 한 듯 황갈색으로 한껏 늦가을의 정취를 자아내고있다

어느 듯 불어오는 쌀쌀한 소슬바람에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보도위에나딩굴고 

커다란 후박나무 잎은 바람 성화에 못 이겨서 그 큰 몸집이 질질 끌려가고 있다.

 

계절은 십일월도 중순을 지나 하순을 향해 달리고 있다.밤낮의 일교차가 심하니 앞 

발코니의 커다란 유리창이 아침저녁으로 마치 우유를 뿌린 듯한 시뿌연 안개처럼 성에로 뒤 덮였다.

어렸을 때 저녁이나 아침나절 유리창에 낀 안개 성에에 손가락으로 기차를 그린 다음 차 바퀴와 

칙칙 폭폭 연기도 그려 넣고기다랗게 레일도 그려서 마음은 알지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달려가 

보기도 하고...

 

다음 유리창에는 동그라미를 작고 크게 두개를 겹쳐서 그린 다음 가운데는 두점 돼지 코를 그리고

다음으로 큰 동그라미에 벌려서 두 점 찍어 두 눈 그리고 조그만 귀와 나사모양으로 도루루 말려 

꼬부라진 꼬리를 그리면 간단한 아기돼지가 되었다.  

 

토끼도 잘 그렸다커다랗고 쫑긋하고 긴 두귀타원형으로 기다랗고 좀 큰 몸통그 몸통 끝에 

몽실한 작은 꼬리는 점점이 찍어서 부드럽게 그리고 먹이인 풀도ㅆㅆ 이렇게 그려 넣고...

마음 한 구석 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가 매년 이맘때면 생각이 나는 추억이다.

 

겨울 방학 때면 시골 외가댁에를 다니러 가면 누군가가 집에 찾아오면 촘촘한 종이 문문살사이에

붙여놓은 명함 조각만한 조그마한 유리 조각에 한쪽 눈을 대고 내다보던 정경도 생각이 난다

문을 열고 내다보면 사나운 황소 바람이 마구 들어 올 터이니까...

그 시절 시골에서는 유리가 아주 귀한 물건이었나 보다.  

 

가을이면 완자무늬 나무 문 살에 붙은 헌 한지 종이를 물을 뿌려서 깨끗이 뜯어내고남은 풀 찌꺼기도

잘 씼어 내고밀가루 풀을 쒀서 가장자리가 매끄럽지 못한흰 한지를 반듯하게 손질을 할 때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대로 문종이를 바른 다음진 분홍색 코스모스 꽃잎이나 국화꽃 잎 꽃송이를 붙여 넣고 

덧바른 다음 냉수를 입으로 확 뿌려서 양지 바른 곳에 말리면 짱짱하게 잘 말라 탱탱 북소리를 내면서

기분 좋게 겨우내 이 문을 여닫으면서 뭉긋한 겨울을 맞고는 했었는데...  

 

이 문 종이가 숨을 쉬어서 숩도 도 조절하고 적당히 맑은 공기도 들랑거리게 해서겨울에 지나기가 

훨씬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스산한 겨울이 닥쳐오는데 아이들과 여러 가지 바쁜 일이 

많을 때라 일 년 만 지나도 빛이 바래고 거므시레 한데 다 구멍까지 숭숭 난 이 문종이를보노라면 

이 일이 괜찮을 적도 있었지만귀찮을 때도 종종 있었다.

 

집을 크게 몽땅 수리하면서 안쪽 종이 문을 모두 반투명 유리창으로 바꾸니 가을이 되어도 편안하긴 

하지만 평상시 목소리도 유리창에 부딛혀서 찌렁찌렁 울리는 듯 하고 습도도 조절이 안 되는 것 같고 

그윽하던 분위기도 사그러진 듯 했다. 

그 후로 옛날 물건으로 장식을 한 전통 찻집이나 음식점에서 장식품으로 걸려 있는이런 문틀을 보노라면

그때 귀찮다고 모두 버릴 일이 아니라 한두 개 라도 잘 두었다가  아파트에 살면서 시멘트로 된 구조물

속에 삭막하기 조차한 나의 서재 한 귀퉁이에  그 옛날 정취도 살리고 집안 분위기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라도 가을이면 새하얀  문종이에 밀가루 풀냄새...

향긋한 황국과 샛노란 은행잎 빨간 단풍잎을 넣어 바른이 완자무늬 한지 문으로 꾸몄더라면 얼마나

운치가 있었을까 하고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