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해는 서쪽 산등성이 나무가지에 걸려서.... 며칠간 우수수 추웠던 가을, 그 속의 봄이런가. 따뜻한 기운에 끌려서 오랜만에 앞산으로 등산을 갔다. 급경사가 진 길로 곧바로 올라가면 가깝겠지만 조금 돌아서 낮게 경사진 길을 택했다. 산자락에 붙은 밭에는 이미 고추나무는 가을걷이를 끝낸듯 고추대만 앙상하게 말라서 흰색으로 남은 고추만이 몇개 오다가다 달려 있다. 늦갈이로 심은듯 어린 배추와 무가 아직은 푸른색으로 싱싱하게 한참 자라고 있다, 들깻단을 베어서 청색 비닐 위에 수북하게 쌓아 놓은걸 보니 실제 사람이 거둬 들일 들깨 낟알은 얼마 되지 않는것 같이 보인다.   완만하게 경사진 곳이 훤히 트여서 보니 잔디가 깔린 넓은 묘역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서는 꽤 잘 살았던지 작은 벼슬이라도 했던 사람의 幽宅인지 상석과 석등들이 격식을 갗추어져 가즈런히 놓여 있다. 그러나 살아 있어야 힘을 쓸 일이지 죽은 다음에는 이런게 무슨 소용이 닿으랴 싶게 四圍가 고즈넉 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가을은 꽤 깊어져 있다. 이미 떨어져 말라서 갈색으로 변한 뾰족한 솔나무 잎과 큰 손바닥만한 갈나무 잎, 참나무 잎들이 떨어져서 쌓여있는, 길이 아닌 자잘한 나무사이를 헤집고 올라 가면서 낙엽들이 켜켜로 쌓여 있어서 푹신푹신한 걸 밟으면서 예전 같으면 갈퀴로 다 긁어가서 한 웅큼도 남아나지 않았던 해방후 우리나라가 여러모로 너무나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이 났다. 불이 나면 큰일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선가 청아한 산새 소리가 들려 온다. 맑은 공기속이라 그런지 유난히 그 소리가 영롱하다. 마치 어느 누구인가의 깨끗한 영혼의 소리인것만 같이 들린다. 이곳은 붉은 단풍은 없고 온통 갈색나무 숲이다. 청솔모 한쌍이 높은 가지 사이를 날듯이 오가는게 보였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토종 다람쥐가 심심치 않게 보였는데 이 청솔모란 녀석들이 모조리 잡아 먹어 버려 멸종이 되어 버리고 이제는 타지에서 들어온 이 청솔모가,이곳의 주인 행새를 하고 있다. 새도 알을 낳아서 품으면 이들이 전부 가져다 먹어 버려서 이곳에는 새가 둥지를 틀지 않는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이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르 내리고 있다. 젊은 이들은 거저 한 다름에 쉽게 오르기도 하고 내려 가기도 한다. 그간 한참 동안 산을 오르지 않았더니 나는 발 디디기가 허벙지벙이다. 내 발인데 왜 내말은 안듣고 제 맘대로 그리 할려고 하는건지 알길이 없다. 일단 산 언덕에 오르면 별로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편편한 산길이 이어져 있다. 한 동안 산에 오지 않은 동안 나무들은 몰라보게 키가 크고 울창해져 하늘이 가려져 있다.이 길을 따라 그리 힘들이지 않고 나무사이로 난 제법 넓은 산길을 걸으면 된다. 한 겨울 눈이 오듯이 한잎두잎 운치 있게 떨어지는 나무 아래 길에는 벌써 떨어져서 등산온 많은 사람들의 발에 짓밟혀서 모양이 바스라져 가는 낙엽들이 잔뜩 깔려 있다. 아주 심한 바람이 불었던 어느 해 여름날에 쓸어진 큰 아카시아나무가 하늘을 향해서 뿌리를 뻗힌채, 그대로 죽은 큰 짐승처럼 골짜기에 머리를 쳐 밖고 오늘도 드러 누워 있다. 키가 크면 먼저 바람을 맞는다고 하던가. 사람도 저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늦게 올라간 등산길이라 어느새 기우는 해가 서쪽으로 누엿누엿 넘어 가려하고 있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자리한 흰돌과 검은 자갈로 색을 갈라서 박아 놓은 발지압 장. 마치 하얀 참깨와 검정깨 두가지로 갈라서 만든 자르기전 깨강정 같이 보이는 이 지압 발판은 발이 닿는 부분을 돌의 뾰족한 쪽을 세워 박아 놓아서 밟으면 발 바닥이 꽤나 얼얼하다. 그래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이곳에 둘러 한바탕 발 지압을 하고들 돌아간다. 어딘가 건강에 좋다고 들었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 오려고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여 하산을 서둘렀다. 올라 갈 때와는 달리 내려오는 길에는 발이 그다지 무겁지 않다. 이 맛에 사람들이 등산을 하나보다 하고 약간은 뿌듯한 기분이 되어서 내려 올때에는 급경사가 진 길을 택해서 조심조심 내려 왔다. 넘어가기 싫은 듯이 서쪽 산등성이 나무가지에 걸려서 한참을 타는듯하게 붉은 빛을 내고 있던 해는 내려 오는 길을 신경 쓰느라고 보지 못한사이 인사도 없이 서산으로 넘어가고 서산마루에 노을만이 여운을 남긴채 붉으레한 석양 빛으로 곱게 마지막 빛을 내고 있었다.                    2003년 11월 2 일  Skylark (7회)          (등산길 옆에 단풍이 예쁘게 든 이름 모를 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