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03.10.19 21:19

가울 오후의 산책

조회 수 1583 추천 수 306 댓글 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며칠을 감기로 고생을 하고 있는 터에
모처럼 시간 나는 오후인지라
눕고 싶은 마음과 쳐지려는 몸을 간신히 추스려서
이를 악물 듯이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오래간만에 뒷산에라도 가려고 나섰다.
걸음이 맘대로 걸어지지 않았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걷기로 다짐을 하며 출발을 했다.

아직도 추수하지 않은 논 사이로 갈대가 하늘거리는 모양이 보기 좋았다.
할머니 들깨 털어 키질하는 데서는 구수한 냄새가 났다.
길가에 심은 가지도 고추도 다 추워 보이는 날이다.
바람 가리운 양지에는 아직도 달맞이꽃이 피어있고
하얀 별꽃도 잔잔하게 피어있었다.
알토란은 벌써 다 캐어 갔나보다  작은 우산 만한 잎새가 다 땅에 떨어져
이미 다 말라져 있었다.
오랜만에 솔 냄새를 맡으니 코가 저절로 벌름거려진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조금이라도 이 향기를 내 몸 속에 넣어두기 위해서 인양....  
길가에 희한하게도 보라색 엉겅퀴 딱 두 송이가 피어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려준 것 같아서 오길 잘했다 싶었다.

친구 네 가게서 마신 솔잎 차가 영 제 맛이 나지가 않아서
내가 만들어보기로 했다.
봄에 난 솔잎으로만 차를 만드는 줄 알았는데 아무 때고 새로 난 잎이면
다 된다고 했다.
솔가지 끝에 새로 난 연둣빛 잎을 따는데  훔쳐 가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손에 송진이 묻어서 아직도 지지 않는다,
잘 발효되어 제 맛이 나면 되면 친구네 가져다주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친구 생각하며, 제대로 된 빨간 단풍잎을 한 가지 구했는데
들고 오는 동안 예쁜 잎이 다 떨어져 버렸다.
내일 다시 구하러 가야지....  
아직 온전치 않은 몸이 따라줄라나 모르지만
내일은 또 내일 걱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막 해가 지려고 하는 시간이라서 온통 세상이 빛나고 있었다.
소나무들이 모두 주황빛을 이고 있었다.
아파트 창문마다 황금빛이고...
이젠 다 어스름 빛도 사라지고 별들이 보인다.
  • ?
    향기 2003.10.19 21:21
    청초 선배님!!
    요즘 글 안쓰냐고 궁금해 하시기에 오늘 일기 처럼 쓴 걸 그냥 올려 봤습니다.
  • ?
    소정 2003.10.20 22:23
    향기님 오래간만에 글을 올렸군요,
    향기님 글은 언제 읽어도 마음 편헌 정서가 흐르는군요.

    그곳이 어덴지.....
    들깨 구수한 냄새며 다 캐어낸 토란 마른잎새며
    가지 고추들의 추운 가을밭 풍경하며,
    솔잎 향기 은은한 고향 마을을 생각나게 하네요

    솔잎 차 발효시켜 마시고 어서 감기가 나아야 겠어요.
    소정
  • ?
    향기 2003.10.21 12:03
    소정 선배님~~감사합니다.
    이제 감기 다 나아서 어제는 금수산에도 다녀왔어요.
    전 원래 잘 아프지 않는데 한번 앓으면 몰아서 아픈지 좀 심하지요.
    그래도 자리 보전하고 누어서 앓는 체질이 아니라서 할 일은 다 하고 다닌답니다.
    할 일 놔두고 누우면 마음이 편치 못 해서요~~~
  • ?
    향기 2003.10.22 15:30
    향기 (2003-10-21 14:52:56)

    지금쯤은 여행에서 돌아오셔서 쉬고 계시겠군요.
    가을 경치가 너무 좋지요?
    저도 어제 금수산에 다녀왔는데 정말 기막히게 좋았습니다 .
    솔잎 차가 어디에 좋은지는 조사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만
    마시면 정말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요.
  • ?
    청초. 2003.10.22 15:48
    향기님.

    여행에서 돌아 온후
    바로 다음날 집안에 볼일이 있어서
    바쁜 바람에
    지금에야 컴앞에 앉았어요.

    우리 나라 서쪽 지방의 여행은 처음이어서
    좀 생소했는데
    그곳도 아주 평화로운 곳이었고,

    제일 인상적인게
    조선시대 유명한 서예가이자
    실학자이신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 나시고,
    생전에 사셨던 집에를 탐방한게 인상적이었고.

    대원군의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가 보았던 것도
    의외의 수확이었어요.

    서울 가까히 살면은 이런 기회를 같이 하는것도
    참으로 보람있는 일인데....

    건강 지키셔서 이 좋은 가을에
    예쁜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솔잎 차는 누가 주어서 생긴적이 많았는데
    맛이 좀 쓴듯하여 안 마셨거든요>^^


    (향기님 글 밑에 답글을 넣었는데
    아래 위로 똑 같은 내 글이 뜨길래
    하나만 지우려 해도 안되어서 내 글을 지웠더니
    향기님 글도 따라서 없어 진것 같았는데 ...
    향기님 글은 겨우 찾아서 다시 넣었어요.^^
    내 글은 아주 살아져 버렸고,,,,,


    2003년 10월 22일 청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