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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오랜 기다림에 지쳐서....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싸늘해 졌다.

언제 그런 큰비가 쏟아졌느냐 싶게 푸른하늘에는 흰 구름도 몇점 두둥실 무심히
흘러 가고 있다.

거실의 밝은 갈색 나무마루 위로  앞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의 길이가 깊어졌다.
등어리에 비치는 햇볕의 느낌이 따사롭기까지 하다.

정원에 있는 아주 자그마한 흰 들국화와 보라색 들꽃도 아침 나절 찬 바람에
흔들리니 파리할 정도로 애처럽고 귀엽다.

나무 밑의 음영도 깊어지고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도 힘을 잃은 듯 하다.

나무밑을 찾아와서 이가지 저가지로 옮겨 다니며 우지지는 이름모를 작은새의
지저귐 소리가 가을 바람속에 영롱하게 울려 온다.


오늘 아침에 T.V 에 비치는 이산가족들의 모습.

이제 죽기 전에 꿈속에서라도 그 모습을 잠간만이라도 보고 지고하던 부모님과

형제들이 몇십년이라는 세월의 장벽을 넘어서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서로가
한 핏줄이 틀림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안타까운 짧은 만남이 이루어진 뒤,

이제 또 다시 언제 생전에 만나 뵐지 어떨지, 기약도 없어 서로를 부등켜 안고
있는 사이 안타까운 시간은 흘러서 서로 손길을 놓아야 될 순간이 다가왔다.

명주실 같이 다 세어버린 흰머리에 몸이 말린 북어 같이 바싹 마른 팔순 노모가
버스 창으로 내미는 손을 차마 잡지도 못하고 버스의 몸체에 머리를 파묻은 채
어머니를 놓치기 싫어 몸부림을 치는 육십이 넘은듯한,

이제는 그만 늙어버린 아들의 몸짓이, 그 옛날 어린시절 엄마 앞에 떼쓰며 응석을
피던 시절 그 모양으로 몸부림치며 흐느끼는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북에서 하도 고생을 하고 정신 무장을 해온 탓인지 팔순 노모가 오히려 의연하고,
아들의 등을 치며 무엇이라고 차라리 짐승의 포효와 같은 소리로 호통을 치신다.

짐짓 그러셨을 것이려니 생각을 한다.
그분도 돌아가는 버스속에서 너무나 슬픈 마음을 가누지 못하셨으리라.....

십년전인가 이산 가족을 찾을 때 아침밥을 먹은 후에는 나는 찾을 친척도 없으면서
매일 T.V 앞에 앉아서 그들이 가족을 찾을 때마다 절절한 그들의 아픈 사연에 제절로

흐르는 눈물을 억제 하지못하고 아예 수건을 옆에 가져다 놓고 눈이 붓도록 훔치고
또 딱고 하여 나중에는 머리가 아파 오곤하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튼 이북에서 온 그들은 씩씩해 보인다.
정신 교육이 아주 잘 되어 있는것 같이 보인다.

그들이 너무나 고생을 하는것 같이 보여서 안타까워 흐느끼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남쪽에서 온 형제들을 짐짓 등을 두두리며 진정을 시키는 역활을
하는것은 오히려 그들이다.

헤어지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더 내 혈육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도 만저보고,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 속에 언제 그리 다급한 시절이 있었던가 싶게 흘러가
버리는 그  짧은 시간들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너무나 오랜 기다림에 지치고 정신까지 혼미 해져 그 옛날 헤어진 아들의 모습도
한참은 기억해 내지 조차 못하던 구십이 넘게 늙으신 어머니.

그러다 겨우 알아 보자마자 헤어져야 하는 이 상황이 또 믿기지도 않고....

너무나 늙어 버려 이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옆에서 알아 듣기도 힘든 당신만의
어조와 중얼거림으로....

어둔하시어 표현도 잘 못하시고 슬픔도 나타내지 못하는
구십노모의 표정은 차라리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이제는 누군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흐르는 세월앞에 어쩔수없이 늙어 있는
어른이된 딸의 모습....

이북을 향해서  떠나 버린 버스 뒷 모습을 쫓아가며 엉엉 울부짖다 주저앉고
마는 그 정경은 정말 우리의 가슴을 쓰라리게 한다.

너무나 오래된 우리 민족의 이 비극이 끝이 날 날은 언제쯤 일까 .... ?



                        2003년 9월 22일 Skylark, 이용분 (7회)